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일본인 사찰 조계사에 팔린 숭정전

정준극 2009. 4. 3. 23:45

일본인 사찰 조계사에 팔린 숭정전

 

숭정전

   

장충동에 있는 동국대학교에 올라가 보면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대궐같은 집이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대궐같은 집이 아니라 대궐의 집이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었다. 다음은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경희궁 안내 팜플렛에 실린 내용중 숭정전에 대한 설명이다.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이다. 경희궁 창건 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년)경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졌던 곳이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숭정전 건물을 일본인 사찰인 조계사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正覺院)으로 남아 있다."  현재 경희궁에 있는 숭정전은 옛날 설계도를 보고 복원한 것이다. 

 

 동국대학교의 정각원 건물 


여기서 잠시! 조회를 아침에만 여는 회의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조정(朝廷)에서 여는 회의는 모두 조회이다. 조정은 궁궐의 정전 앞마당을 말한다. 품계석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그런데 대체로 조정에서의 회의는 아침에 열었다. 어떤 임금은 무척 부지런해서 그런지 또는 새벽잠이 없어서 그런지 아침 5시부터 조회를 열었다. 그러자면 신하들은 새벽 4시에는 조정이나 편전에 나와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 집에서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궁궐에서 집이 가까이 있어야 그나마 조회에 참석하기가 쉬웠다. 그래서 웬만한 대신들은 궁궐에서 가까운 삼청동, 팔판동, 가회동, 재동, 사간동, 소격동, 계동, 인사동 등 이른바 북촌에 살았다. 북촌에 살고 있는 양반들 중에서 가세가 곤궁한 사람은 세간을 내다가 팔거나 전당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인사동 골동품 상점들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얘기가 빗나갔기 때문에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다시 숭정전으로 돌아오자. 숭정전의 내부는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옥좌와 그 위의 닫집과 천정의 쌍용 조각도 모두 새로 만든 것이다. 단청도 새롭게 칠했다. 승지나 사관들이 앉았던 장소에 방석도 가져다 놓았다. 몇가지 장식품도 마련해 놓았다. 보기에 좋았다. 기왕이면 승지, 사관, 내시 등을 마네킹으로 전시하면 더욱 실감이 날것이라고 어떤 관광객이 말했다.

 

 숭정전 내부. 일월오악도를 비롯하여 닫집 등 모두 복원했다. 승지나 사관들이 앉는 자리들도 재현했다.

 숭정전으로 올라가는 답도. 멋있게 잘 만들었다.

 

 숭정문. 단청이 화려하다.

 숭정문의 답도의 쌍봉

 숭정전 내부의 옥좌와 천정 쌍용 조각

숭정전 좌위의 행각. 좁은 공간을 이용한 지붕들이 멋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