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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테너(Countertenor)

정준극 2009. 5. 5. 04:55

카운터테너(Countertenor)


카운터테너는 보통 활세토(Falsetto: 가성) 또는 자연두성(Natural head voice)을 이용하여 알토, 메조소프라노, 또는 소프라노 음역의 노래를 부르는 남성 어른을 말한다. 어린 남자로서 카운터테너와 같은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남성 알토’(Male Alto)라고 부른다. 카운터테너는 주로 고전음악에 등장하지만 요즘에는 팝송에서도 카운터테너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파레라 가수들 중에 카운터테너의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카운터테너의 역할은 쇠약해 졌지만 20세기에 들어서서 헨델, 비발디 등 바로크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과 함께 카운터테너에 대한 수요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카운터테너로 훈련받은 성악가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로 적절한 카운터테너 출연자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중에도 영국의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와 앤드류 래들리(Andrew Radley)가 카운터테너로서 훈련을 받아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더구나 여러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조나단 도우브(Jonathan Dove)의 오페라 '플라이트'(Flight: 비행)에 피난민으로 등장한 카운터테너 앤드류 라들리(Andrew Radley).

                         

카운터테너의 역사


초기의 다성(多聲)음악은 테너와 데스칸트(隨唱部)로 구성되었으나 15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콘트라테너(Contratenor)라는 파트가 추가되었다. 중세 다성음악 또는 대위법 음악에 있어서 테너는 멜로디와 같은 역할이었다. 원래 테너라는 말은 라틴어의 테네레(tenere), 즉 ‘붙잡는다’(hold) 또는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테너 파트는 멜로디였기 때문에 그러한 용어가 붙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데스칸트는 테너보다 위에서 멜로디를 장식해 주는 역할이었다. 콘트라테너는 일반적으로 테너와 같은 음역이지만 테너나 데스칸트에게 멜로디적 요소를 양보하는 입장이었다. 1450년경에 4성 파트의 음악이 등장하자 콘트라테너는 콘트라테너 알토(contratenor altus)와 콘트라테너 베이스(contratenor bassus)로 나뉘어졌다. 콘트라테너 알토는 테너보다 높은 음이었고 콘트라테너 베이스는 테너보다 낮은 음에 위치했다. 세월이 흐르자 복잡한 용어는 쇠퇴하여 콘트라테너 알토는 그냥 알토로 부르게 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오트-콩트르(haute-contre)라는 용어로 변천하였고 영국에서는 카운터테너라는 용어로 발전하였다. 그 카운터테너라는 용어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에서는 사도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고 말한 가르침 때문에 이를 확대해석하여 여성은 교회에서 찬미조차 부르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의 주장이며 속으로는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최초로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죄를 생각하여 여성을 원죄인으로 간주하고 금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 등장하여 노래를 부를 경우, 여성의 성부(聲部)는 카운터 테너 또는 이른바 보이스 소프라노(Boys soprano)가 맡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한동안 소프라노 파트를 남성 활세토 성악가가 부르도록 한 일도 있다. 이들을 활세티스트(Falsettist)라고 불렀다. 오페라에서 카운터테너는 초기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왜냐하면 카스트라토(복수는 카스트라티)라는 특별한 성악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의 오페라에서는 카스트라토를 무대에 내세우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유행이었다. 예를 들어 1607년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에서는 카스트라토가 몇 개의 역할을 한꺼번에 맡을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카스트라티는 교회음악에도 참가하기 시작하여 그 전까지 활세티스트와 보이스 소프라노(이를 treble이라고 불렀다. 높은 음이란 뜻이다.)가 맡았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소프라노 활세티스트는 1625년 마지막 활세티스트인 스페인 출신의 조반니 드 상토스(Giovanni de Sanctos)가 세상을 떠나자 명맥이 끊어지게 되었다.


카스트라토가 단연 두각을 나타낸 것은 17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오페라에서였다. 프랑스 오페라에서는 오트-콩트르가 계속 남성 주역의 역할을 맡아했고 영국에서도 카운터테너가 상당한 역할을 맡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트라토가 무대를 휩쓸었다. 영국에서 카운터테너가 계속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예를 들어 퍼셀이 1692년에 발표한 ‘요정 여왕’(The Fairy Queen)에서 세크레시(Secrecy)와 섬머(Summer)의 역할이 카운터테너였던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퍼셀은 카운터테너를 무척 애지중지했던 모양이다. 퍼셀의 합창음악에서는 카운터테너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어 어떤 경우에는 두명 이상의 카운터테너가 노래를 부르도록 하기 까지 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인 헨델 시대에 이르러 영국에서도 이탈리아에서처럼 카스트라토 시스템이 도입되어 무대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실상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카스트라티가 부인들과 할 일 없는 귀족들의 열열한 박수를 받으며 오페라의 무대를 압도하게 되었다. 단, 프랑스는 아직도 프랑스판 카운터테너인 오트-콩트르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영국의 헨델은 그의 오라토리오에 주로 카스트라티를 기용하였지만 간혹 카운터테너를 솔로이스트로 사용하는 아량을 베풀기도 했다. 헨델의 카운터테너 파트는 퍼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음역이 A3에서부터 E5에 이르기까지 넓었다. 카운터테너들은 헨델의 합창에서 알토 파트의 노래도 불렀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는 교회 찬양대원으로 카스트라토 대신에 카운터테너를 기용하였다. 이유는? 카스트라토는 어릴 때에 아빠가 되지 못하도록 거세한 사람이므로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곤란했던 것이다. 카운터테너는 영국 성공회의 전통에 의해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 찬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국에서 성공회의 전통이 없었다면 아마 카운터테너들은 더 일찍 실직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카운터테너


20세기에 들어서서 카운터테너는 활발하게 등장한 복고주의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카운터테너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는 정통적인 초기 영국음악의 연주에 수호기사(챔피언)였다. 델러는 처음에 자기 자신을 알토라고 불렀다. 그러나 동료인 마이클 티페트(Michael Tibbett)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알토는 무슨 알토! 카운터테너야!’라고 주장하여 그로부터 고풍스러운 용어인 카운터테너로 부르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델러는 카운터테너에 뜻을 둔 젊은 성악가들을 규합하여 ‘델러 콘소트’(Deller Consort: 델러 조합)를 구성하였다. ‘델러 조합’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의 이해증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벤자민 브리튼은 1960년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서 오베론(Oberon)의 아리아를 델러를 위해 작곡하였다. 브리튼의 또 다른 오페라인 ‘베니스의 죽음’(Death in Venice)의 초연에서 아폴로 역할은 델러의 후계자인 제임스 보우맨(James Bowman)이 맡았다. 러셀 오벌린(Russel Oberlin)은 미국에서 활동한 델러의 카운터파트였다. 오벌린은 미국에서 바흐 이전의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어 넣어 주었으며 이로써 미국에서도 카운터테너 지망생이 많아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카운터테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오페라의 공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원래 카스트라티를 위해 작곡한 역할도 오늘날에는 카운터테너들이 맡아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릴 때에 거세하여 카스트라티로서 육성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초 여성이 부르도록 작곡된 ‘바지역할’도 카운터테너가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카스트라토를 주역으로 삼아 작곡된 오페라는 생각 외로 많다. 예를 들면 글룩의 ‘오르페오와 유리디체’에서 오르페오의 역할이다. 헨델도 카스트라토를 위해 많은 오페라를 작곡했다. 예를 들면 ‘줄리오 세자레’와 ‘올란도’(Orlando)의 타이틀 롤, ‘로델린다’(Rodelinda)의 베르타리도(Bertarido) 등이다. 현대 작곡가로서 카운터테너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한 경우도 많다. 벤자민 브리튼은 그렇다고 하고 이밖에도 아리베르트 라이만(Aribert Reimann)의 ‘리어’(1978)에서 에드가, 필립 글라쓰(Philip Glass)의 ‘아크나텐’(1983)에서 타이틀 롤, 토마스 아데스(Thomas Ades)의 ‘템페스트’(2004)에서 트린쿨로(Triculo)가 모두 카운터테너의 역할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남자가 여자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마치 남자 코디언이 여자 옷을 입고 나와서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떠들어 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유치찬란할 것이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남자 흉내를 내는 것도 우스워 죽을 지경인데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나와서 여자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은 가관이 아닐수 없다. 오페라에는 ‘바지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박쥐’에서 오를로프스키 공자는 남성인데 여자인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그러니 실감이 덜하다. 와일드하며 터프하고 한량인 오를로프스키 공자가 여자의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니 실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 왜 그랬을까? 왜 바리톤이나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메조소프라노를 사용했을까? 웃기느라고 그랬을까? 그렇다면 웃기는 일이 아니다. 일부러 그렇게 배려했을까? 그렇다면 요한 슈트라우스는 정말 코믹한 작곡가가 아닐수 없다. 글룩의 ‘오르페오와 유리디체’에서 오르페오는 분명히 남성이다. 그런데 메조소프라노나 콘트랄토가 맡는다. 왜 테너나 바리톤이 맡지 않도록 했을까? 웃기느라고 그랬을까? 그렇다면 도무지 우습지 않은 일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서 청년백작 옥타비안이 메조소프라노이다. 여자(옥타비안)가 여자(마샬린)와 시시덕거리는 것은 사실 재미도 없다.


카운터테너로 하여금 남자 역할을 맡도록 한 것도 웃기는 일이다. 목소리는 소프라노나 알토와 같은 여성인데 남자 역할을 하도록 했으니 이상하지 않을수 없다. 헨델의 ‘줄리어스 세자레’에서 세자레(시저)는 카운터테너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헨델의 ‘리날도’에서도 리날도 장군은 카운터테너가 맡는다. 위대한 장군들이 소프라노 목소리로 등장한다. 왜 그랬을까? 어떤 설명에 따르면 예전에는 높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하인이나 노예는 낮은 소리, 즉 베이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이나 장군들을 소프라노가 맡을 수밖에 없었으나 교황청의 규정에 따라 여성이 노래를 부르면 곤란하므로 남자 소프라노인 카운터테너를 기용했다는 것이다.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영국의 중국계 작곡가인 제프리 칭(Jeffrey Ching)의 오페라 '고아'(Das Waisenkind: The Orphan)의 한 장면. 오스밍티역은 카운터테너 디네스 레이키(Denis Lakey).

 

카운터테너의 음성


카운터테너를 전문으로 한 사람의 음성은 메조소프라노 음성과 같기도 하고 콘트랄토의 음성과 같기도하다. 현대에서 카운터테너라는 용어는 중세기에 사용했던 콘트라테너 알투스라는 용어와 근본적으로 대등한 것이기 때문에 음역에 있어서도 서로 비슷하다. 카운터테너의 음역은 G 또는 A3로부터 E5 또는 F5까지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카운터테너들은 실제로 고음을 낼 때에 흉성보다도 활세토(假聲)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흉성은 일반적으로 대화할 때의 음성과 같은 소리를 말한다. 카운터테너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중간 음역 아래의 저음을 내는 것이다. 간혹 Bb3와 같은 음을 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흉성과 활세토(가성)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테크닉도 대단히 필요하다. 한편, 저음에서 고음으로 이전할 때에 활세토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또는 두성(頭聲: Head voice)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다만, 전문가적인 카운터테너들은 대체로 가성의 사용을 기피하고 있다. 일반 테너들도 오페라에서 고음을 낼 때에 두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극단적인 사람들은 전체가 되었든 일부가 되었든 활세토를 사용하지 않는 카운터테너는 진정한 카운터테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탈리아에서 말하는 테노르 알티노(tenor altino)와 프랑스에서 말하는 오트-콩트르(haute-contre)도 고음에서는 기본적으로 활세토를 사용한다. 카운터테너는 고음에서 C5이상을 낼수 있어야 한다. C5라면 모든 테너에게 악명이 높은 하이C를 말한다. 그러자면 일반적인 두성이나 흉성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가성만이 이문제를 해결해 줄수 있다.


어떤 활세토 카운터테너들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 비견하는 높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량을 가진 카운터테너들을 보통 소프라니스트(Sopranist) 또는 ‘남성 소프라노’(Male soprano)라고 부른다. 아주 희귀한 경우지만, 성인 남성으로서 사춘기 이전의 변성되지 않은 소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남성 호르몬이나 다른 신체적 이유 때문에 그럴수 있다. 이들을 의학적으로 ‘내분비적 카스트라토’(Endocrinological castratos)라고 부른다.


이제 활세토 기법을 이용한 카운터테너의 노래를 들어보자. 알토 또는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이다. 헨델의 리날도(Rinaldo)에서 리날도의 아리아를 카운터테너 데이빗 다니엘스(David Daniels)가 부른다.

http://www.youtube.com/watch?v=PWrhaITIpsg


이번에는 후두를 이용한 완벽한 두성으로 소프라노 음역의 아리라를 부르는 카운터테너의 노래를 들어보자. 마이클 마니아치(Michael Maniaci)가 부르는 헨델의 ‘줄리오 세자레’에서 니레노(Nireno)의 아리아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voZsllaIf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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