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거장 건축가

Joseph Emanuel Fischer von Erlach(요셉 에마누엘 피셔 폰 에어라흐)

정준극 2009. 5. 19. 04:44

Joseph Emanuel Fischer von Erlach(요셉 에마누엘 피셔 폰 에어라흐)

국립도서관, 호프부르크 제국수상동, 결혼분수


요셉 에마누엘은 바로크 건축의 거장 피셔 폰 에어라흐의 아들이다. 그래서 간혹 피셔 폰 에어라흐 2세라고 불리기도 한다. 요셉 에마누엘은 1693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1742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바로크 양식뿐만 아니라 로코코양식과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요셉 에마누엘은 아버지인 피셔 폰 에어라흐가 추진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건축물들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칼스키르헤(Karlskirche)와 궁정도서관(현재의 국립도서관), 스페인승마학교 등이다. 그러나 그는 여러 궁전과 교회를 단독으로 건축하였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기념물, 정원, 묘지, 교회의 제단 등을 완성하였다. 그중에서 호프부르크의 제국수상동(Reichskanzlertrakt)는 폰 힐데브란트의 뒤를 이어 완성한 것이다.


국립도서관 내부 프룬크잘


요셉 에마누엘은 1717-19년 프랑스에 머무르면서 프랑스 궁정건축가인 로베르 드 코트(Robert de Cotte)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런던과 네덜란드 등지를 순방한 그는 1722년 비엔나에 돌아와 궁정건축가를 얻었다. 1723년 아버지 폰 에어라흐가 세상을 떠나자 왕실건물 총감독의 자리는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2년후인 1725년 요셉 에마누엘이 왕실건물 총감독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를 후원하는 궁정 고관의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추진했던 몇가지 건축물을 완성할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건물은 궁정도서관(현 국립도서관), 스페인승마학교, 그리고 칼스키르헤이다. 사실 요셉 에마누엘은 뛰어난 건축가였지만 항상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이름을 떨칠수가 없었다. 1729년 그는 궁정회의소의 자문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광산에서 증기엔진을 사용하는 기법을 적극 도입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때문에 그는 1735년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스페인승마학교 공연장 


요셉 에마누엘는 캐른트너토르(캐른트너 문) 부근에 살았다. 그는 귀중한 예술품과 도서들을 상당히 수집하여 존경을 받았다. 그러다가 1742년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전담하여 건축한 궁전으로서는 에카르차우(Eckartsau)궁전 등이 있으나 로브코비츠궁전, 슈봐르첸버그 궁전 등 여러 궁전들의 리모델링을 주도한 것은 그의 큰 업적이다. 호에르 마르크트에 있는 결혼분수(Vermahlungsbrunnen)도 요셉 에마누엘의 작품이다.

 

호에르 마르크트의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기념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