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거장 건축가

Johann Lucas von Hildebrand(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

정준극 2009. 5. 19. 04:45

Johann Lucas von Hildebrand(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

벨베데레 궁전, 슈봐르첸버그 궁전, 페터스키르헤,아우어슈페르그 궁전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궁전인 벨베데레 궁전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의 작품이다. 1구에 있는 오이겐공자의 시내궁전(Stadtpalais: 현재 연방재무성 청사), 슈봐르첸버그(Schwarzenberg)궁전, 페터스키르헤(Peterskirche), 헝가리의 라케브(Rackeve)궁전, 4구에 있는 쇤부르크(Schönburg) 궁전, 8구 요셉슈타트에 있는 아우어슈페르크(Auersperg) 궁전, 락센부르크(Laxenburg) 궁전, 쇤브룬 궁전(일부는 요한 피셔 폰 에어라흐의 작품), 1구의 다운 킨스키(Daun-Kinsky) 궁전, 포텐도르프(Pottendorf) 교구교회, 8구 요셉슈타트의 피아리스텐키르헤(Piaristenkirche), 3구 란트슈트라쎄의 하라스(Harrach) 궁전, 브레슬라우의 황금독수리저택(Haus zum Goldenen Adler) 등이 모두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의 솜씨이다.

 

벨베데레 궁전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는 1668년 이탈리아의 제노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이었으며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폰 힐데브란트는 로마에서 당대의 건축 거장 폰타나(Fontana)로부터 배웠으며 이어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로부터 토목공학과 군사공학을 배웠다. 이때부터 그는 오이겐 공자와 각별한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오이겐 공자를 위해 벨베데레 궁전을 건축한 것도 그러한 인연 때문이었다. 1696년, 28세의 청년으로 비엔나에 온 그는 오이겐 공자를 비롯하여 다운(Daun)가문, 하라흐(Harrach)가문, 쇤보른(Schonborn)가문, 슈타렘버그(Starhemberg)가문 등 귀족가문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비엔나에 온지 4년후인 1700년 그는 드디어 호프부르크 궁정엔지니어로 임명되었고 3년후에는 호프부르크 궁정건축가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호프부르크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폰 에어라흐 부자(父子)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폰 힐데브란트의 작업은 궁전이 아닌 개인을 위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폰 힐데브란트는 오히려 왕실이 아닌 상류 귀족층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러한 연유로 비엔나 시내에 있는 팔레(궁전)들의 상당수는 폰 힐데브란트의 작품이다.

 

 페터스키르헤(성베드로교회)


폰 힐데브란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건축요소를 연합하였다. 여기에 납부독일과 오스트리아 특유의 바로크 스타일을 가미했다. 1713년부터 3년동안 그는 부유한 킨스키(Kinsly) 가문에 고용되었다. 1구의 킨스키 궁전을 그 때에 건설한 것이다. 이 기간에 그는 하벨베데레(1714-16)을 완성했으며 곧이어 상벨베데레(1721-22)를 완성했다. 1723년, 그는 마침내 요한 피셔 폰 에어라흐의 뒤를 이어 왕실건물 총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폰 힐데브란트는 바바리아공국을 위해서도 일했다. 대표적인 건물은 봐이쎈슈타인(Weissenstein) 궁전이다. 폰 힐데브란트는 1745년 비엔나에서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