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거장 건축가

Karl Freiherr von Hasenauer(칼 프라이헤르 폰 하제나우어)

정준극 2009. 5. 19. 04:52

Karl Freiherr von Hasenauer(칼 프라이헤르 폰 하제나우어)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부르크테아터, 호프부르크

 

1880년도의 하제나우어

 

비엔나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건축물은 허다하지만 그중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건물이다. 부르크테아터,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은 독일이 낳은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비엔나 출신의 칼 프라이헤르 폰 하제나우어(Karl Freiherr von Hasenauer)와 젬퍼의 공동작품이다. 그런데도 미술사박물관에 들어가보면 젬퍼의 대리석 흉상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폰 하제나우어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잊혀져 있다. 젬퍼가 더 선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젬퍼는 내부설계를 맡았고 폰 하제나우어는 외관설계를 맡았기 때문에 젬퍼가 자기의 흉상을 실내에 우선적으로 설치해 놓았다는 의견이다.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은 1871년에 시작하여 20년 후인 1891년에 완성되었다.

 

하제나우어의 작품인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


비엔나 시청(Rathaus) 건너편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극장이다.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극장 중의 하나이다. 부르크테아터도 젬퍼와 폰 하제나우어의 공동작품이다. 전례대로 젬퍼는 내부를 맡았고 폰 하제나우어은 외부를 맡았다. 부르크테아터는 1874-1888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부르크테아터의 경우는 미술사나 자연사박물관과는 달리 젬퍼보다는 폰 하제나우어가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젬퍼는 드레스덴에 있는 오페라극장(젬퍼오페라극장)으로 이름나 있으며 폰 하제나우어는 링슈트라쎄의 건물들로 더 알려져 있다. 실로 링슈트라쎄에 있는 상당수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은 폰 하제나우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하나하나 완성되었다. 이같은 공로로 그는 1873년 프란츠 요셉 황제로부터 귀족인 남작(Freiherr)의 타이틀을 받았다. 폰 하제나우어는 1873년 비엔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장의 건설 총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호프부르크의 정문(미하엘러토르) 


두 사람은 파트너였지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결별하였다. 흥미있는 사실은 젬퍼와 폰 하제나우어의 분규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젬퍼 추종자와 폰 하제나우어의 추종자들이 오늘날 까지도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참 할일도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건축하는 사람들로서는 중요한 일이다. 폰 하제나우어는 젬퍼와 결별한 이후 호프부르크의 건설을 단독으로 추진했다. 칼 프라이헤르 폰 하제나우어는 1833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1894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술박물관(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