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거장 건축가

안톤 도미니크 페른코른(Anton Dominik Fernkorn)

정준극 2009. 5. 22. 22:32

Anton Dominik Fernkorn(안톤 도미니크 페른코른)

샤를르 대공 기마상, 아슈페른의 사자

 

                         

안톤 도미니크 페른코른은 비엔나 관광명소 1번지인 호프부르크 앞의 헬덴플라츠에 있는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과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을 제작한 위대한 조각가이다. 그는 원래 독일 사람이지만 젊을 때 비엔나에 와서 죽을 때까지 지냈으므로 오스트리아의 조각가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물론 건축가는 아니지만 조각가로서 비엔나를 빛나게 했으므로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로 간주한다. 뮌헨에서 조각을 공부한 그는 1840년 27세의 청년으로 비엔나로 왔다. 당시 비엔나에서는 신고전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페른코른은 그러한 시류에 합류하여  바로크 조각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그의 조각에 반영하였다. 이를 기본으로 그는1859년 헬덴플라츠의 샤를르(칼) 대공 기마상을 제작하였다. 샤를르 대공은 1809년 아슈페른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을 격퇴한 유명한 장군이다. 페른코른은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을 제작함에 있어서 말의 뒤쪽 발꿈치만으로 균형을 유지토록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페른코른은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을 완성한지 6년후인 1865년에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을 완성했다. 헬덴플라츠에서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과 마주보고 있는 기마상이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이다. 페른코른은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도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과 마찬가지로 말의 뒤 발꿈치로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말의 꼬리를 추가하여 균형을 잡도록 했다. 그때쯤하여 페른코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때문에 더 이상 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헬덴플라츠의 샤를르(칼) 대공 기마상

오이겐 공자 기마상(꼬리를 잘 보시라)

 

페른코른은 인물상 조각의 대가였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흉상은 대표작이다. 그는 또한 동물 조각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아슈페른(Aspern)에 있는 무명용사 전몰기념물인 사자상은 그가 제작한 것이다. 자그레브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요십 옐라치크(Josip Jelacic)의 기념상은 재미난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자그레브 중심가의 광장은 옐라치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자그레브가 오스트리아에 속하여 있을 때 오스트리아 당국은 자그레브 시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장 가운데에 옐라치크의 기마상을 세웠다. 1866년이었다. 당시에는 기마상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1946년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당국은 옐리치크가 오스트리아의 협조자라고 비난하고 기마상을 철거했다. 그러나 1990년 크로아티아가 독립하자 크로아티아는 옐리치크의 역사적인 업적을 재평가하고 그의 기마상을 다시 세웠다. 이번에는 남쪽을 향하도록 했다.


아슈페른 교회 앞에 있는 아슈페른-에슬링전투 영웅 추모비(Lion of Aspern)

                        

그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한 이듬해인 1813년 독일 투링기아(Thuringia)의 에어푸르트(Erfurt)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1878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페른코른은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는 유명한 조각가 요셉 바이어(Josef Beyer)가 제작한 것이다. 페른코른이 조각 장비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묘비의 가장자리에는 그의 대표작인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과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 그리고 아슈페른의 사자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 있는 요셉 옐라치크의 기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