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거장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

정준극 2009. 5. 19. 04:58

Adolf Loos(아돌프 로스)

로스하우스, 아메리칸 바

 


아돌프 로스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는 20세기 유럽 현대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의 저서인 ‘꾸밈과 범죄’(Ornament and Crime)는 건축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을 펼쳐 보인 것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아르 누보(Art Nouveau)의 오스트리아 버전인 비엔나 제체시온(Secession)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거부하였다. 그는 건축에 있어서 새로운 표현형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에 대하여도 비평을 아끼지 않았다. 모라비아의 브르노(Brno)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불과 아홉 살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소년으로 성장했다. 건축에 재능을 보인 아돌프 로스는 아버지처럼 석공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 예술학교를 지원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것도 그가 반항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된 큰 이유였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비엔나로 올라간 그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매춘부들과 어울리는 바람에 매독에 걸려 21세에는 남자로서 더 이상 후손을 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그를 보고 그의 어머니는 1893년 법적으로 자식으로서의 관계를 끊었다. 그는 신세계인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에서 그는 별별 힘든 일을 다했다. 그러한 그에게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뉴욕의 상류사회 인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로부터 몇해 안에 대단히 세련된 지식인으로 변모했다. 3년후 그는 비엔나로 돌아왔다. 뉴욕 상류사회의 풍미를 지닌 그는 곧이어 화려한 비엔나 인텔리겐챠들의 그룹에 합류할수 있었다. 그때 아돌프 로스가 특별히 친분을 맺고 지낸 인물은 아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칼 크라우스(Karl Kraus),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등이었다. 


비엔나의 아메리칸 바


아돌프 로스는 비엔나 상류층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후원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다가 1918년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아 위를 절제하는 등의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그는 평생 동안 햄과 크림만을 겨우 먹을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재주도 훌륭하여서 몇 번이나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결혼한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50세 쯤이 되었을 때는 청각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러한 처지에 58세 때에는 아동성학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1933년 비엔나 부근의 칼크스부르크(Kalksburg)라는 마을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무일푼이었다.

 

그의 개인생활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었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이상은 높았다. 그는 극단적이고 개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전적인 전통에 대하여는 언제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디자인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방식이나 취미의 모든 면에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1982년 MIT가 펴낸 그의 저서 ‘Spoken into the Void'를 읽어보면 그가 지닌 아이디어의 본질을 이해할수 있다. 그리고 1908년에 내놓은 'Ornament and Crime'에서는 비엔나 제체시온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거부하였다. 그는 저서에서 문화의 진전은 매일의 사물에서 장식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건축가 또는 공예가에게 장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건축물에서는 장식을 중요하게 여긴 것들도 볼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적으로는 로스의 작품에 나타난 평범한 것과 복잡한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 로스는 장식예술에 대하여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은제장식품과 고급가죽제품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수집한 물건들은 평범한 디자인이면서도 대단히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었다. 그는 남성복에 대하여도 관심이 많았다. 비엔나의 유명한 크니체(Knize) 양복점(그라벤 소재)에서 남성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양복에 장식을 댄 디자인이었다.   


장크트 바이트 가쎄 10번지의 슈타이너 하우스


아돌프 로스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비엔나에서는 1910년에 완성한 로스하우스(Looshaus)가 대표적이다. 미하엘러플라츠(미하엘광장)에서 호프부르크 정문을 바라보고 있는 이 건물은 골드만과 잘라츄 빌딩(Goldman & Salatsch Bld)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무슨 금융기관이 들어서 있다. 1908년에는 캐른트너두르흐강의 아메리칸 바(American Bar), 1910년에는 슈타이너(Steiner)하우스, 1922년에는 루퍼(Rufer)하우스를 완성했다. 이밖에도 비엔나와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크로이츠버그(Kreuzerberg) 등에 있는 여러 빌라와 저택을 설계했다.

 

미하엘러플라츠의 로스 하우스(Loos Haus). 눈섶이 없는 얼굴과 같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돌프 로스는 극도로 장식적인 것을 피하고 실용적인 건축에 치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