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Mahler(구스타브 말러) - 2
1880년, 말러는 20세의 약관으로 지휘자의 길에 나섰다. 처음 지휘를 맡은 것은 바드 할(Bad Hall)의 여름 극장이었다. 이어 점차 더 큰 극장의 지휘를 맡았다. 1881년에는 류블리아나(Ljubliana), 1882년에는 올로무츠(Olomouc), 1883년에는 비엔나와 카쎌(Kassel), 1885년에는 프라하, 1886년에는 라이프치히, 1888년에는 부다페스트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이렇게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중에 가장 기록에 남을 일은 1887년 라이프치히에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한 것이었다. 라이프치히에서의 공연은 아르투르 니키슈(Arthur Nikisch)가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갑자기 사정이 생겨 지휘를 하지 못하게 되자 말러가 맡게 된 것이다. 말러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하여 대단한 격찬을 받았다. 말러는 유럽에서 가중 훌륭한 지휘자 중의 한 사람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베버의 미발표 오페라인 Die drei Pintos(세 사람의 핀토)를 완벽하게 지휘하여 명성을 더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있게 되었다. 어느해 말러는 모차르트의 Don Giovanni(돈 조반니)를 지휘하였다. 이를 본 브람스는 대단히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말러가 가장 오랜 기간 지휘자로 계약되어 있었던 곳은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이었다. 1891년부터 1897년까지 6년 동안 있었다.
함부르크 오페라극장. 전쟁후 현대식으로 재건.
말러는 함부르크에 있는 기간중, 1893년부터 1896년까지 3년동안 북부오스트리아의 아터제(Attersee) 인근에 있는 슈타인바흐(Steinbach)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3년에 걸친 여름 휴가 중에 그는 교향곡 1번을 새로 수정하였으며 교향곡 2번을 완성하였고 교향곡 3번의 스케치하였다. 또한 가곡집인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s Wunderhorn)의 대부분을 완성하였다. 1897년, 비엔나 궁정오페라극장(현재의 슈타츠오퍼)은 37세의 말러를 음악감독으로 초청하였다. 이 직위는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요직이었다. 당시 법에 의하면 유태인은 제국의 중요 직책을 맡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말러는 유태계였지만 한번도 유태인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린 일이 없다. 더구나 말러는 어릴 때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래서 겨우 비엔나 궁정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에 임명될수 있었다. 실제로 말러의 음악에서는 가톨릭의 영향을 볼수 있다. 교향곡 8번에 나오는 Veni Creator Spiritus는 가톨릭의 찬송이다. 그렇지만 유태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교향곡 1번의 3악장의 테마는 유태적인 멜로디이다.
말러는 비엔나 궁정오페라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레퍼토리의 변화를 시도했으며 아울러 예술적 수준의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러는 오페라의 공연에 있어서 지휘자의 역할을 크게 제고하였다. 연주자나 관중들이나 모두 지휘자의 의도에 따르도록 노력한 것이다. 말러가 비엔나 궁정오페라에 부임했을 때 이 오페라극장이 선호했던 작품은 로엔그린, 마농,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이었다. 새로 부임한 말러는 글룩,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 오페라에 에너지를 집중하였다. 또한 화가인 알프레드 롤러(Alfred Roller: 1864-1935)의 도움으로 무대 장치를 어둑어둑하면서도 환상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공연된 작품으로는 베토벤의 ‘휘델리오’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있다.
아터제(Attersee)호반에 있는 작곡가의 작은 집. 말러가 혼자서 작곡을 하던 집이다.
말러가 비엔나에 있던 시기에 비엔나는 위대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로서 중앙 유럽의 중심도시였다. 예술활동이 활발하였고 지식인들의 모임이 빈번한 곳이었다. 위대한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와 에곤 쉴레가 활동한 도시였다. 말러는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개로운 사상과 새로운 개념의 예술가, 시인, 작가들과 교류를 하며 지냈다. 그중에는 유태인들도 많았다. 말러는 1년중 9개월만 비엔나 궁정오페라에서 일하고 나머지 3개월은 여름휴가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말러는 여름휴가를 주로 남부오스트리아 카린티아(Carinthia)의 마이어니그(Maiernigg)에서 보냈다. 한가한 시골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교향곡 8번을 작곡했으며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의 시에 의한 가곡들을 작곡했다. 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Das Kindertotenlieder(죽은 아이들의 노래)를 작곡하였고 Des Knaben Wunderhorn(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마지막 세팅인 Der Tamboursg'sell(북치는 동무들)을 완성하였다.
카린티아의 마이어르니그에 있는 말러의 여름별장 빌라 슈봐르첸펠스(Villa Schwarzenf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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