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삼성동 봉은사(奉恩寺)

정준극 2009. 5. 30. 07:28

삼성동 봉은사(奉恩寺)

도심의 문화관광지

 

2009년 5월 중순의 어느날,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파키스탄원자력연구소의 연구원이다. 내가 언젠가 파키스탄에 갔을 때 아주 친절하게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던 사람이었다. 근처의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왔기 때문에 삼성동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점심을 함께하고 산책 및 문화탐방을 위해 봉은사에 갔었다. 우리나라 사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강남의 마천루 틈에 이런 넓고 훌륭한 사찰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다. 화창한 날씨에 봉은사 입구에 다다르니 봉은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입구의 누각 아래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짐작대로 자살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한두 사람이 국화를 헌화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어디를 갔다가 오는 사이에 나의 외국인 친구는 어떤 옆에 있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있던 그 사람의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청렴하다는 것 하나로 인기를 끌어 느닷없이 대통령에 당선된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주로 가족과 측근들이) 청렴하기는 커녕 재임중에 어떤 기업가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주로 현찰 달러로 받았는데 그런 사실을 이리저리 속이며 숨기고 있다가 검찰 조사 결과 밝혀지자 소환을 받았고 나아가 구속까지 될 형편이 되자 얼굴을 들기가 어려워 죄송하다면서 자살했으므로 국민된 입장에서 조의를 표시하는 것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설명이었다.

 

그 외국인은 ‘아하, 그 시람에 대한 얘기군요’하면서 신문을 통해 한국의 전직 대통령의 뇌물과 관련한 보도를 읽었다면서 의외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라면 더구나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혐의가 있으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뇌물을 받아서 자기 아들딸에게 뉴욕에 있는 호화아파트를 사주었다는 그런 사람에게 왜 저렇게 조의를 표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라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원래 한국 사람들은 정에 약해서 아무리 죄를 저질렀어도 일단 죽으면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리고 애도하는 습성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형식적이지만 잠시 묵념을 드리고 절 안으로 들어섰다. 봉은이란 무슨 뜻인가? 짐작건대 받은 은혜를 감사히 여긴다는 뜻일 것이다. 세상에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한없는 은혜를 이상한 형태로 보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의 녹을 먹고 호강할것은 다 호강하고 국민의 혈세로 사저를 아방궁으로 짓는다더니 죽어서도 국민장을 치루게 되어 국민의 혈세를 거창하게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참에 봉은의 참뜻이 널리 전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족들이 뇌물받아 먹은 문제로 자살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과연 극락왕생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고보니까 이번이 두번째의 봉은사 방문이었다. 맨 처음으로 봉은사를 알게 된 것은 1960년대 말이던가, 70년대 초반이던가였다. 동료들 몇 명과 함께 법정(法頂)스님을 만나러 왔던 것이었다. 법정 스님은 당시 메마른 사회에서 간혹 신문이나 잡지에 좋은 글을 기고하여 많은 독자들로부터 그의 글과 사상과 철학이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봉은사에 간다는 일은 하루 품을 파는 일이었다. 시청 앞에서 동대문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고 동대문에서 전동차를 타고 왕십리를 거쳐 뚝섬까지 온 후에 한강을 건너는 나룻배를 타고 지금의 영동교 쪽으로 건너와 한참이나 걸어서 봉은사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봉은사 주변은 넓은 채마밭이었다. 밭농사 짓는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한번 가보시라! 세상에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는 없을 것이다. 달라진 점이 수없이 많다. 예전에는 봉은사가 낡은 기와집 몇채였다. 지금은 건물도 많아졌고 대부분 새로 단장하여 정말 보기에 좋았다. 게다가 우거진 숲사이로 미륵대불도 건립되어 있어서 외국 손님들에게 우리나라의 사찰을 견학시켜 주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두 번째로 봉은사를 방문했던 것은 한두해 전의 사월초파일날이었다. 사월초파일 법요식을 여유있게 볼수 있었다. 더구나 점심나절에는 누구나 줄을 서서 잔치국수 공양을 받을수 있어서 내친김에 부처님 오신 날을 깊이 축하하며 점심요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절 입구의 상점들. 산중다원은 전통차를 맛볼수 있는 곳이며 솔향기 가게는 전통식품을 파는 곳이다.

 

외국 친구는 절 입구에 서 있는 진여문의 단청문양에 감탄했고 대웅전에서 경건하게 무슨 재를 올리는 모습에 감탄했으며 선불당에 수많은 작은 부처를 모셔 놓은 것을 보고 감탄했고 미륵전과 미륵대불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규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저 가는 곳마다 감탄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종각과 판전 등 몇군데 작은 전각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새집과 마찬가지로 단청이 잘 되어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판전(板殿)의 현판 글씨를 설명해 주고 싶어서 이리저리 노력했는데 그 친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보기에도 무슨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저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지만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하니 그런줄 알고 지낼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봉은사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이라고 한다. 서기 800년쯤에 연회국사(緣會國師)라는 분이 창건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절의 이름이 견성사(見性寺)였다고 한다. 절이름 치고는 좀 특이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에 봉은사라는 좋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서울 강남의 센터에 1천2백여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음은 감사할 일이다. 봉은사는 대찰이다. 규모가 크다. 사업도 많다. 경내에는 시민선방(市民禪房)이라는 현대식 건물도 있다.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Temple Stay)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의 프로그램은 사찰순례, 참선, 다도(茶道), 발우공양, 예불체험, 인경(印經), 승려와의 대화, 자비명상, 연화(蓮花)만들기, 사경, 염주(합장주)만들기, 108배 올리기, 울력 등 다채롭다. 과연 우리나라의 사찰들은 문화의 요람이 아닐수 없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외국인을 위한 목요상설 템플라이프(Temple Life) 프로그램이 별도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1만원이다. 템플스테이의 약식 프로그램으로서 사찰순례, 참선, 다도가 진행된다. 물론 영어로 진행된다. 봉은사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 외교사절이다.

 

향적원(香積院)과 보우당은 지붕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향적원은 대중공양식당이라고 하는데 공사중이었다. 보우당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어떤 스님의 강의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봉은사에 대한 설명은 한정된 지면으로 생략코자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서 보고 배우는 것이 제일이다. 안내 팸플릿도 여러 나라 말로 잘 만들어져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미륵대불에 대하여 일언코자 한다. 1996년에 세워졌다. 봉은사의 새로운 랜드마크이다. 봉은사 사부대중(四部大衆) 1만여명이 동참하여 10년에 걸쳐 이룩한 불사였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부처님으로 보였다. 오라! 은진 미륵을 연상케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니 전통적인 백제 계열의 미륵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봉은사 입구의 진여문. 황금 범종을 등불로 만들어 놓았다.

 봉은사 주변의 고층건물들

점심때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몰려 나와 이곳저곳에서 담소를 나눈다.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모습

 봉은사 입구의 코끼리

 사천왕문의 아름다움

 고승들의 부도

 법왕루 단청의 현란함

 불공을 위한 쌀, 초 무인판매대

이건 무슨 건물이었더라? 하도 많아서라니! 아름다운 창문 디자인.

 봉은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미륵전 단청의 아름다움 

새로 지은 지장전의 천불상

 실감있게 그린 호랑이(호랑이 꼬리를 쥐고 있더라도 정신만 차리면이라는 교훈적 그림)

 대웅전 천장.

옛날 봉은사에서 승과시험보는 장면 그림

선불당. 누구나 쉬어갈수 있는 오아시스 

삼층석탑에 기원하는 여인들 

 

 범종각. 아주 오래되었다. 복원이 필요. 그래도 어느곳보다 방문자들이 많다. 무슨 영험이 있는 모양이다.

 대웅전의 삼존불

대웅전 외벽에 그려진 부처 일대기 그림 중 첫번째. 마야 부인이 흰코끼리 꿈을 꾸고 부처를 잉태하다.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판전의 현판. 혹시 발로 쓴 것?

 미륵대불의 위용. 넓직해서 기념촬영하기에 좋다.

주로 강연회나 전시회 등이 열리는 보우당의 문 앞. 어떤 할머니가 앉아 계속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중얼거리고  있다.

 앗, 웬 동자승들이 휴식중? 개미가 많을텐데...

 날렵한 종루. 정말 멋있는 건물이다. 종루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의 미를 관람한 것 같다.

 

 

'발길 따라, 추억 따라 >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촌 이대 뒤편의 봉원사(奉元寺)  (0) 2009.06.25
탑골공원  (0) 2009.06.08
배재학당역사박물관(아펜젤러/노블 기념관)  (0) 2009.05.28
경찰박물관   (0) 2009.04.20
낙성대(落星垈)  (0)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