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역사박물관
(아펜젤러/노블 기념관)
서울 중구 정동의 옛날 배재학당이 있던 자리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바로 길 건너의 법원 건물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들어섰다. 옛날 배재학당의 자리에는 우리나라 근대학교로서는 처음으로 서양식 벽돌건물이 있었다. 동관과 서관, 그리고 대강당이었다. 세월이 흘러 대강당 자리에는 현대식 배재빌딩이 들어섰으며 서관은 해체된후 그대로 명일동의 현 배재중고등학교로 이전되었고 동관은 역사성을 생각하여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 옛 배재학당 동관은 서울시 기념물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동관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들어섰다. 작년(2008)에 문을 열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Appenzeller/Noble Memorial Museum(아펠젤러/노블 기념 홀)을 겸하고 있다. 필자는 배재학당 졸업생으로서 옛 동관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그곳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마련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실은 나도 그 동관의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었다. 누구나 모교를 사랑하지만 배재 동문들은 유별나게 모교를 사랑한다. 배재인(培材人)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배재인의 자부심은 어디로 부터 연유하는 것인가? 배재학당의 정신에서 비롯한다. 배재학당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교훈의 가르침대로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기라’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장 청렴한척 주장하면서 실은 뒷주머니로 엄청난 뇌물을 받아 챙기는 그런 일은 없다.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끝까지 모든 혜택을 보겠다는 유치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존경을 받을수 없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현관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학교다운 학교였다. 여기서 잠시 배재학당이 세워진 연혁을 살펴보자. 배재학당은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목사님이 설립했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조선 선교사를 자원했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조선에 선교사로 떠나기 두 달 전인 1884년 12월, 엘라 닷지(Ella Dodge)와 결혼하였다. 조선 선교를 위한 귀중한 동역이었다. 결혼 한지 두 달 후인 1885년 2월, 아펜젤러 목사님과 엘라 닷지 사모님은 광활한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가는 배를 탔다. 일본에 도착한 이들은 잠시 조선 선교를 위한 막바지 준비를 마치고 두달 후인 4월, 드디어 조선 땅 제물포에 도착했다. 당시 미국 장로교단이 파견한 언더우드 목사님도 함께 도착하였다. 아펜젤러 목사님과 언더우드 목사님이 조선 땅에 처음으로 도착한 날은 마침 부활절이었다. 이들은 “오늘 사망의 빗장을 부스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May He who this day burst the bars of the tomb bring light and liberty to Korea.)라고 기도하였다. 두분의 기도 덕분으로 이 나라는 나중에 해방이 되어 기독교 정신으로 교육을 받은 배재학당 출신의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배재학당의 교훈을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 當爲人役)이라고 정하였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아펜젤러 목사님의 모습과 배재 교훈이 먼저 보이는 박물관 입구
아펜젤러 목사님이 제물포에 도착한 당시의 조선은 갑신정변으로 내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있었다. 도저히 서울로 들어가서 전도할 분위기가 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당국으로부터 아직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잠시 제물포에 머물렀던 아펜젤러 목사님과 엘라 사모님은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그해 7월에 다시 제물포에 도착하여 서울로 들어갔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한 아펜젤러 목사님은 우선 학교부터 개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1885년 8월 3일 두어명의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정동에서 신학문의 학교를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배재학당이다. 배재학당이라는 학교 명칭은 그 다음해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인 1886년 6월 8일 고종께서 아펜젤러 목사님이 시작한 새로운 학교에 배양영재(培養英材)라는 글을 내려주었다. 나라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배재(培材)라는 교명이 만들어졌다. 아펜젤러 목사님과 엘라 사모님은 제물포에 도착하여 잠시 머무르는 동안 인천 내리교회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서울에서 배재학당을 세운 후에는 정동교회를 설립하였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그후 20여년 동안 오로지 어두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신학문을 가르쳐 민족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 목사님은 목포에서 열릴 예정인 성경번역회의에 참석키 위해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던중 목포 앞 바다에서 갑자기 배가 침몰하게 되자 어떤 한국 소녀를 구한후 그만 기운이 쇠진하여서 익사하였다.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거룩한 희생이 아닐수 없다. 아펜젤러 목사님의 아들인 헨리 닷지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는 부인 루스 노블(Ruth Noble)과 함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재학당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들딸에게 미국에 있는 호화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 뇌물을 받아 먹고 들통이 나니까 비겁하게 모른다고 하던데...아펜젤러 목사님은 아들까지 한국을 위해 봉사하라고 보냈다.
모두가 한국을 한없이 사랑한 분들이다. 반미로 재미보았다는 어떤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배재역사박물관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귀중한 유물들과 함께 우리나라 신교육의 발상지였던 이곳에서 한국 근대사의 새로운 이야기기 시작된다. 첫째 파트는 배재학당의 설립으로부터 그 이후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다. 명예의 전당에서는 배재학당을 거쳐간 이승만, 신흥우, 윤치호, 주시경, 나도향, 김소월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분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배재학당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배재의 정신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1층 전시관에 들어서면 옛날 교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감회가 깊었다. 어느덧 반세기 전에 학우들과 함께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이윽고 교실에서 나오면 배재학당의 교가가 자동적으로 울려 퍼진다. 더욱 감회가 깊었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그 옛날 교정에서 교모를 손에 움켜쥐고 흔들며 교가를 부르던 생각이 난다.
2층에는 아펠젤러 목사님의 가족들과 노블 선교사님의 가족들에 대한 전시실이다. 그분들이 낯설고 물 설은 조선 땅에 와서 지내던 모습들이 수많은 자료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감사하기도했다. 아펜젤러 목사님의 아들인 헨리 닷지 아펜젤러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사랑하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하여 부인 루스 노블 여사와 함께 현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그 얼마나 지극한 한국 사랑인가? 반미(反美)로 재미를 보았다는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배재 졸업생들은 물론,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방문해야 하는 필견의 장소이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설명하며 안내하는 직원도 있다. 070-7506-0072로 연락하면 된다.
우리 말로는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지만 영어로는 '아펜젤러/노블 메모리얼 뮤지엄'이다.
배재학당의 마크가 선명한 안내 간판
박물관 입구
H. D. A. (헨리 닷지 아펠젤러)의 여행용 가방. 그 옛날에 TWA 비행기로 LAX(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한국에 도착하였음을 알수 있다.
'배움의 전당'이라는 주제의 기념탑.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루는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여 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돌 기둥.
전경
옆 면
또 다른 옆 면
그 옆의 배재공원 표지석
동관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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