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게르스틀(Richard Gerstl)
리하르트 게르스틀(1883-1908)은 25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생전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오늘에 이르러는 높이 재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내면의 심리적인 사항을 표출한 것이라는 중평이다. 비엔나에서 태어난 게르스틀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명문 피아리스텐김니지움(Piaristengymnasium)에 들어갔으나 성적이 좋지 않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해야했다. 다행히 그의 집안은 넉넉했기 때문에 가정교사를 두어 공부하였다. 게르스틀은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로 비엔나미술아카데미에 들어갈수 있었다. 그러나 지도 교수들은 그가 자만에 빠져 제대로 수업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를 기피하였다. 게르스틀은 어떠한 지도도 받지 않고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자화상
1900년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규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프란츠 요셉 황제를 위한 행진에 참여토록 강요되자 ‘예술가에겐 가치 없는 일’이라면서 거부하고 학교를 떠났다. 학교를 나온 그는 1904-05년 학급 동료였던 빅토르 함머(Viktor Hammer)의 스튜디오에 들어가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게르스틀은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친구 함머도 대단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기피하였던 게르스틀은 음악만은 좋아하였다. 게르스틀은 구스타브 말러를 존경하여 그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였다. 말러와 친분을 갖게된 그는 말러 주변의 다른 음악가들과도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현대음악의 기수인 아놀트 쇤베르크, 작곡가 겸 지휘자인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등은 그가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게 된 사람들이었다. 특히 쇤베르크는 게르스틀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와 함께 예술에 대한 토론을 갖기를 즐겨했다. 1907년 여름, 게르스틀은 쇤베르크의 가족과 함께 그문덴(Gmunden)으로 여름 휴가를 함께 갔다. 이 기간에 게르스틀은 쇤베르크의 초상화를 몇 점 그렸다. 게르스틀은 쇤베르크의 부인인 마틸데(Mathilde)를 포함한 가족들의 초상화도 그렸다. 이때에 게르스텔과 마틸데는 대단히 가까워졌다. 이듬해 8월, 마틸데는 남편 쇤베르크와 아이들을 남겨 둔채 게르스틀을 따라 비엔나로 갔다. 쇤베르크는 두 번째 현악4중주곡을 작곡하고 있었다. 쇤베르크는 비엔나의 마틸데를 설득하고 때로는 자살하겠다고 위협하여 결국 마음을 돌렸다. 마틸데는 두달 후인 10월에 가정으로 돌아왔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그린 쇤베르크 가족(왼쪽)과 쇤베르크
게르스틀은 마틸데가 떠나자 방황하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그의 예술작품이 사회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이 복합되어 그는 마침내 1908년 11월 4일 자기의 스튜디오에서 자살했다. 그는 목을 매달기 전에 방안에 있던 모든 편지와 서류,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의 작품까지도 불에 태웠다. 다행히 상당수 작품들이 불에 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는 편지들과 서류와 그림들을 태운후 스튜디오 거울 앞에서 목을 매달았으며 확실히 죽기 위해 칼로 몸을 찌르기도 했다. 게르스틀의 자살은 쇤베르크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작품인 Die Glückliche Hand(행복한 손)은 이 사건을 근거로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이후 그의 가족들은 게르스틀의 작품들을 추스려 간직하고 있다가 1931년 화상인 오토 칼리르(Otto Kallir)의 주선으로 비엔나의 노이에 갈레리(Neue Galerie)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나치는 게르스틀의 작품을 퇴폐적이라고 하여 금지했다. 전쟁이 끝난후 게르스틀의 작품은 미국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게르스틀의 작품은 회화 66점, 소묘 8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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