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느 폰 게라르(Eugene von Guerard)
유제느 폰 게라르(1811-1901)는 비엔나에서 태어났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호주로 가서 말년을 보낸 풍경화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시스1세(프란츠1세) 궁정에서 미니에이쳐 화가였다. 폰 게라르는 1839-1844년 뒤셀도르프아카데미에서 풍경화를 공부했으며 그후 여러 나라를 여행하여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았다. 폰 게라르의 개인적인 그림 스타일은 클로드 로레인(Claude Lorraine), 니콜라스 뿌쌩(Nikolas Poussin), 살바토르 로사(Salvator Rosa)등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었으며 뒤셀도르프아카데미로부터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를 위시한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가 들의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다. 독일 낭만주의는 나자레네스(Nazarenes)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통한 신과 인간과의 연계를 시도한 작풍이다. 나자레네스는 독일을 떠나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들을 말하며 특히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활동한 그룹이다.
오페라 무대에서의 무도회
1852년 그는 호주의 빅토리아에 도착하였다. 빅토리아의 금광에서 행운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금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금을 찾는 곳의 생활을 담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는 호주에서 미술가로 성공할수 있다고 믿고 금 캐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는 주로 넓은 땅을 가진 부호들의 저택이나 토지를 그렸다. 그리하여 1860년대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풍경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870년 폰 게라르는 빅토리아주 국립미술관 회화학교장에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11년간 호주의 유능한 미술학도들을 가르치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사진과 같다는 비판이 있어서 인기가 떨어졌다. 그는 1882년 회화학교를 은퇴하고 유럽으로 돌아가 1901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냈다. 그는 호주은행에 투자한 것이 큰 손해를 보아 말년에 극도로 빈곤한 생활을 하였다.
블루 마운틴의 고베트 단애와 그로우스 계곡 (Govett's Leap and Grose River Valley, Blue 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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