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오펜하이머(Max Oppenheimer)
에곤 쉴레가 그린 막스 오펜하이머
1885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막스 오펜하이머는 전위예술가였다. 그는 15세 때에 비엔나아카데미에 들어갈 정도로 미술에 대한 재능이 많았다. 이어 그는 1903년 프라하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고 1906년에는 체코의 첫 전위예술가들의 모임인 OSMA(the Eight)에 참여하였다. 당시 그는 인상주의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특히 막스 리버만(Max Liebermann)의 작풍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점점 전위(아방 갸르드)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1908년 비엔나로 돌아온 그는 오스카 코코슈카와 에곤 쉴레의 서클에 합류하였다. 그는 코코슈카의 심리적 인물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펜하이머의 첫 개인전은 1911년 뮌헨에서였다. 이어 베를린에서 프란츠 펨페르트(Franz Pfemfert)가 주도하여 발간하는 Die Action(행동)에서 일했다. 다음 해에 그는 스위스로 자리를 옮겨 1924년까지 머물렀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큐비즘적 요소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스위스에 있을 때에 다다이즘에도 몰입하여 제1회 다다전시회에도 출품하였다.
구스타브 말러가 지휘하는 모습을 그린 필하모니커(Die Philharmoniker). 비엔나의 벨베데레궁전의 20세기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펜하이머는 오케스트라 장면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했다. 비엔나의 벨베데레에 전시되어 있는 Die Philharmoniker(필하모니커)는 구스타브 말러가 지휘하는 장면을 그린 대작이다. 이밖에도 그는 비엔나필의 로제현악4중주단(Rose Quartet), 그리고 클링거현악4중주단(Klinger Quartet)을 그린 작품을 남겼다. 1926년 오펜하이머는 베를린으로 갔다. 그러나 1931년부터 나치에 의하여 독일의 정치상황이 걷잡을수 없는 지경으로 변하자 비엔나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1년후 베를린에서는 오펜하이머의 작품을 그가 유태계라는 이유로 압수하기 시작했다. 1932년 그는 마지막으로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의 전시회에 출품하였고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스위스로 피신하였다. 1939년 그는 미국으로 떠났으며 1954년 뉴욕의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막스 오펜하이머는 미국추상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Kreuzabnahme(십자가에 팔리심)
로제현악4중주단 포스터
'오스트리아의 명인들 > 화가와 조각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크 루돌프 파울(Frank Rudolf Paul) (0) | 2009.06.20 |
---|---|
에바 마리아 파르(Eva Maria Paar) (0) | 2009.06.19 |
헤르만 니츄(Hermann Nitsch) (0) | 2009.06.19 |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0) | 2009.06.19 |
칼 몰(Carl Moll) (0) | 2009.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