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화가와 조각가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정준극 2009. 6. 19. 21:07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콜로만 모저(1868-1918)는 화가 겸 장식예술가였다. 그는 처음에 부모의 희망에 따라 뷔덴(Wieden)에서 실업학교에 들어가 상업을 공부했다. 그러나 미술에 품을 뜻을 포기할수 없어서 1885년 비엔나미술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3년후인 1888년부터 그는 렌베그(Rennweg)에 개인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주로 비엔나 패션잡지를 위해 패션 디자인과 삽화를 그렸다. 1892년 그는 비엔나응용미술대학으로 옮겨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그는 봐르톨츠(Wartholz)궁전에서 칼 루드비히 대공의 자녀들에게 미술과외를 시키는 자리가 생겨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알바를 하면서 학업을 마칠수 있었다.

 

   

제체시온 13회 전시회 출품작   음악상자(Music Cabinet)

 

1894년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젊은 화가들과 토론을 벌이는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곱명이 모였기 때문에 이를 지베너클럽(Siebenerklub)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주로 링슈트라쎄에 있는 카페 슈페를(Cafe Sperl)에서 모였다. 이 모임은 1897년 설립된 비엔나 제체시온의 모체가 되었다. 이때 모인 화가들은 요셉 호프만, 오토 바그너, 아돌프 로스, 요셉 마리아 올브리히(Joseph Maria Olbrich), 구스타브 클림트 등이었다. 비엔나 제체시온은 나중에 베를린 제체시온과 뮌헨 제체시온의 모델이 되었다. 모저는 제체시온에서 활동하면서 기관지인 베르 스크룸(Ver scrum)에 그가 창안한 수많은 디자인 작품을 소개하였다. 그는 실로 여러 가지를 디자인했다. 가구, 유리제품, 보석류, 가죽제품, 섬유제품, 서적의 제본, 심지어는 장난감도 디자인했다. 모저는 1904년 제체시온을 떠났다. 이른바 클림트당(Klimt Faction)으로서 제체시온과 의견을 달리하여 떨어져 나와 비너 베르크슈태테(Wiener Werkstätte)를 결성하였다. 비너 베르크슈태테는 회화뿐만 아니라 공예의 여러 디자인도 포함하는 그룹이었다. 이들은 우수 공예품만을 제작하는 모토를 가졌으며 공예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제작자의 마크를 표시토록 했다. 모저의 작품은 흑과 백의 그리드(Grid) 패턴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그는 1908년 비너 베르크슈태테를 떠나 회화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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