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화가와 조각가

파울 트로거(Paul Troger)

정준극 2009. 6. 21. 21:47

파울 트로거(Paul Troger)

 

자화상

 

파울 트로거(1698-1762)는 후기 바로크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 겸 판화가였다. 트로거의 환상적인 천정 프레스코화는 극적인 생동감으로 찬사를 받는 것이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밝은 색깔을 사용하여 경쾌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트로거의 스타일, 특히 프레스코는 18세기 말의 오스트리아 회화를 지배한 것이었다. 그리고 프란츠 안톤 마울버츄, 요셉 밀도르퍼(Josef Mildorfer), 요한 벤첼 베르글(Johann Wenzel Bergl)등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었다. 트로거는 티롤지방의 푸스터(Puster)계곡에 있는 벨스버그(Welsberg)에서 태어났다. 알프스 자락의 산세가 수려한 지역이다. 그는 16세 때에 티롤지방의 귀족인 폰 피르미안(von Firmian)가의 후원을 받아 프레스코화를 본격적으로 배울수 있었다. 그의 첫 프레스코 작품은 칼테른(Kaltern)의 갈보리교회(Kalvarienkirche)의 프레스코로서 ‘세 천사와 십자가’를 주제로 삼은 것이었다.

 

멜크사원 대리석홀의 프레스코 천정화

 

그는 1722년 베니스를 방문했을 때 조반니 바티스타 피아쩨타(Gionanni Battista Piazzetta)와 주세페 알베르티(Giuseppe Alberti)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의 예술의 중심지인 로마, 나폴리, 볼로냐 등지에서 여러 거장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을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그는 먼저 잘츠부르크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잘츠부르크의 성카예탄(St Cajetan)교회의 ‘성카예탄의 영광’을 주제로 삼은 천정화는 그의 걸작이다. 그후 비엔나에 가서 프레스코화의 대가로서 명성을 떨칠수 있었다. 당시 비엔나에서는 요한 미하엘 로트마이르(Johann Michael Rottmayr)가 주도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트로거는 그에 필적하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찬사를 받았다. 이후 트로거는 남부 오스트리아의 여러 교회와 수도원의 프레스코를 제작하면서 당대의 거장으로 발돋움 하였다. 1753년 그는 제국미술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고 1754년에는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성가족

 

그의 제자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프란츠 안톤 마울버츄(Franz Anton Maulbertsch)였다. 트로거가 오스트리아 미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것은 18세기초의 전형적인 스타일인 강한 어두운 색깔을 배제하고 새로운 로코코 취향의 가벼운 색깔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제작한 프레스코는 산크트 푈텐(St Pölten)의 영국성모교회 프레스코, 멜크사원의 대리석홀과 도서관 프레스코, 괴트봐이크 수도원의 주계단에 있는 ‘아폴로로서 샤를르 5세 황제의 신성’(Apotheosis of Charles V as Apollo), 알텐부르크 수도원의 수도원교회 프레스코,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의 대리석홀과 도서관 프레스코 등이다. 그는 또한 브라티슬라바의 엘리자베트종단 수녀원교회의 프레스코, 헝가리 기외르(Györ)의 성이그나티우스교회의 ‘신으로 받들어진 성이그나티우스’ 등이 있다.

 

아폴로와 같은 신으로 떠받들어진 샤를르 5세(괴트봐이크수도원)

 집을 나가는 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