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시인과 작가

슈테판 츠봐이크(Stefan Zweig)

정준극 2009. 7. 5. 22:41

슈테판 츠봐이크(Stefan Zweig)

브라질에서 부인과 함께 자살


스테판 츠봐이크 


슈테판 츠봐이크(1881-1942)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1934년도 오페라인 Die schweigsame Frau(말 없는 부인)의 대본을 작성한 사람이다. 츠봐이크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비록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오페라라고 해도 그의 대본이 들어간 작품은 공연할 수가 없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츠봐이크를 나치로부터 옹호해 주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말 없는 여인’의 초연 포스터에서 츠봐이크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나치의 눈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히틀러는 드레스덴에서의 초연에 참석한다고 약속해 놓고 정작 참석하지 않았다. ‘말 없는 여인’은 3회 공연 이후 금지되었다. 츠봐이크는 자기의 이름을 내걸고는 어떠한 활동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1937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Daphne(다프네)의 대본을 부탁했을 때에도 친구인 요셉 그레고르(Joseph Gregor)와 협동하여 완성했다. 츠봐이크를 무척 존경했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헨리 졸스(Henry Jolles)는 츠봐이크가 나치를 피하여 브라질로 떠나자 자기도 츠봐이크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헨리 졸스는 브라질에서 츠봐이크가 1941년 11월, 자기의 60세 생일을 기념하여 쓴 Letztes Gedicht(마지막 시)를 기본으로 Ultimo poema de Stefan Zweig(슈테판 츠봐이크의 마지막 시)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슈테판 츠봐이크는 1942년 2월 22일,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Petropolis)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하고 슈테판 츠봐이크가 대본을 쓴 '말없는 부인'의 무대

 

츠봐이크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극작가, 저널리스트, 자서전 작가였다. 츠봐이크의 아버지 모리츠 츠봐이크(Moritz Zweig)는 비엔나에서 직물제조업을 하여 많은 재산을 모은 유태인이었다. 어머니인 이다 브레타우어(Ida Brettauer)는 이탈리아의 유태인 은행가 집안 출신이었다. 츠봐이크는 비엔나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사를 공부했으며 졸업후에는 전위적인 융 빈(Jung Wien: Young Vienna) 운동에 참가하였다. 종교는 그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유태인이지만 사고로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는 유태인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태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시온주의자도 아니었다. 츠봐이크의 작품은 주로 Neue Freie Presse(신자유신문)에 게재되었다. 이 신문은 시온주의 지도자인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이 발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츠봐이크는 헤르츨의 유태국수주의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차 대전에 오스트리아 제국군으로 참전했던 슈테판 츠봐이크

 

츠봐이크는 1차대전중 프랑스 작가인 로망 롤랑(Romain Rolland)과 함께 평화주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여러번의 평화주의 강연회를 가졌다. 츠봐이크의 활발한 평화주의 운동에 힘입어 로망 롤랑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츠봐이크는 평생을 평화운동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한편 나치가 집권하기 전에는 유럽통일을 주창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훗날 유럽연맹(European Union)이 태동하게 되었다. 로망 롤랑과 마찬가지로 그는 여러 편의 다른 사람의 자서전을 썼다. 그가 쓴 Erasmus of Rotterdam(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자기 자신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츠봐이크는 히틀러가 세력을 잡자 1934년 오스트리아를 떠나 런던으로 도피했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가서 정착하였다. 그는 두 번째 부인인 로테(Charlotte Elisabeth Altmann)와 함께 1941년 브라질로 가서 페트로폴리스에서 지내다가 이듬해인 1942년 두 사람이 함께 자살했다. 그는 ‘이쯤해서 나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노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개인적인 자유이며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다.’라고 썼다. 그의 진짜 자서전인 Die Welt von gestern(어제의 세상)은 유럽문화에 대한 찬가였다. 그러나 츠봐이크는 유럽문화가 실종되었다고 보았다.

 

     

'어제의 세계' 표지                       '우편국 아가씨' 표지                 '마리 앙뚜아네트' 표지

 

츠봐이크는 19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유럽의 거의 전역에서 잘 알려져 있지만 영어권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미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그의 작품을 영어와 러시아어로 발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츠봐이크의 대표적인 소설은 The Royal Game(로열 게임), Amok(미친듯 날뛰다), Beware of Pity(동정을 조심하라), Confusion of Feelings(느낌의 혼돈), 그리고 사후에 출판된 The Post Office Girl(우편국 아가씨)이다. 그가 쓴 자서전으로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Erasmus of Rotterdam을 비롯하여 Conqueror of the Seas(바다의 정복자), The Story of Magella(마젤란 스토리), Mary, Queen of Scotland and the Isles(스코틀랜드와 섬들의 여왕 메리)등이다. 나치가 기승을 부릴 때 그의 작품은 영국에서 스테픈 브랜치(Stephen Branch)라는 가명으로 발간된 일도 있다. 슈테판 츠봐이크를 영어로 번역하면 스테픈 브랜치가 된다. 그의 또 다른 자서전인 Queen Marie-Antoinette(마리 앙뚜아네트 왕비)는 훗날 할리우드에서 노마 쉬어러(Norma Shearer)가 타이틀 롤을 맡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1930년대 은막의 스타인 노마 세어러(Norrma Shearer)가 주연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츠봐이크는 저명 작곡가의 친필 서명이 들어있는 오리지널 악보를 다수 수집하였다. 그 중에는 바흐, 하이든, 바그너, 말러의 친필 악보도 포함되어 있다. 츠봐이크의 후손들은 이를 브리티쉬 라이브라리(British Library)에 기증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자필 서명 콜렉션이라는 평을 들었다. 가장 귀중한 수집품 중의 하나는 모차르트가 친필로 적어 놓은 자기 작품의 목록(Verzeichnuss)이다.

 

 슈테판 츠봐이크와 부인 로테의 자살 소식을 다룬 당시의 신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