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시인과 작가

프리드리히 토르버그(Friedrich Torberg)

정준극 2010. 2. 22. 09:04

프리드리히 토르버그(Friedrich Torberg)

 

 1960년대의 프리드리히 토르버그

  

 

프리드리히 토르버그(1908-1979)의 Der Schüler Gerber hat absolviert(거버 학생이 학업을 마치다: 1930)는 어떤 고등학교에서 거버라는 이름의 학생이 독재적인 선생으로부터 말못할 핍박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마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토르버그의 자서전적 작품이라고 한다. Die Tante Jolesch(욜레슈 숙모: 1975)라는 작품은 나치가 들어오기 전의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유태인의 생활에 대한 풍자와 일화들을 모은 책이다. 프리드리히 토르버그는 당대의 풍자문인이었다. 그의 풍자는 가히 일품이어서 모두들 고소를 품지 않을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까지 문학평론가 및 저널리스트로서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유태계였기 때문에 프랑스로 마지못해 이민을 가야 했으며 훗날에는 뉴욕펜클럽으로부터 ‘10명의 위대한 반나치 독일 작가’로서 초청을 받았다. 반나치 작가 중에는 하인리히 만, 프란츠 베르펠, 알프레드 되블린, 레온하르트 프랑크, 알프레드 폴가 등이 포함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할리우드에서 각색가로 활동했으며 그후에는 뉴욕에서 타임(Time)지에서 일하다가 1951년 비엔나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그는 1979년 알저그룬트의 포르첼란가쎄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중앙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지 옆에는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묘지가 있다. 그는 프리드리히 칸토르(Friedrich Kantor)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졌다. 칸토는 유태교 회당의 인도자나 마찬가지의 직분에 있는 사람이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프리드리히 토르버그와 부인 마리에타의 합장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