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이야기/사도 요한 더 알기

신약에 나타난 요한

정준극 2009. 7. 17. 12:48

신약에 나타난 요한

 

사도 요한은 세베데(Zebedee)의 아들이며 역시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James the Greater)의 형이다. '큰 야고보'는 '나이 많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요한의 어머니의 이름이 살로메(Salome)라고 믿고 있다. 성경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는 마태복음 15장 40절 뿐이다.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로메라고 하면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게 한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헤로이다의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는 기록이 없다. 살로메라는 이름은 20세기에 이르러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지어낸 이름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의 사람이 둘이 있다. 그중에서 세베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동생인 야고보를 큰 야고보라고 하며 알패오라는 사람의 아들 야고보를 작은 야고보라고 부른다. 아무튼 요한의 어머니로서 십자가상의 예수를 멀리서 바라보며 애통해 했던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죽여 그 목을 쟁반에 담아 가져다 달라고 했던 그 살로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또 어떤 설명에 따르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는 실은 성모 마리아의 여동생이라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는 세번 결혼했는데 첫번째가 요아힘으로 성모 마리아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며(안나는 성모 마리아를 성령의 힘으로 잉태하였다고 함.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한 것과 같음), 둘째는 클로바라는 사람과 재혼하였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클로바의 마리아라는 딸을 두었고 세번째로는 누구와 결혼했는지 모르지만 그와의 사이에서 살로메라는 딸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로메는 세베데와 결혼하여 요한과 야고보를 낳았으므로 예수님과 요한은 우리 식으로 보면 이종사촌간이 된다.

 

복음서를 쓴 요한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는 원래 어부였다. 게네사렛(Genesareth)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호수를 말한다. 청년 요한과 동생인 야고보가 아버지를 도와 고기 잡는 일을 하였음은 분명하다. 청년 요한은 처음에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제자였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야고보 형제에게 ‘보아너게’(Boanerges: 천둥(우레)의 아들이라는 뜻. 마가복음 3: 17)라는 이름을 더하여 주시었다. 이는 아마 이들의 성격이 급하기도 했지만 믿음의 힘이 천둥과 같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마가복음 15: 51-52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에 함께 있던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역시 무리에게 잡히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했다는 내용이다. 그 청년은 누구인가? 현대의 일부 신학자들은 그 청년이 마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은 끝까지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에 갔으며 나중에는 십자가의 아래에 까지 갔었다. 그만큼 믿음이 곧고 강건했다는 증거이다.

 

교회에서는 제자 중에서 요한의 위치가 특별했다고 보고 있다.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죽었던 야이로(Jairus)의 딸이 살아나는 것을 목격했다(마가복음 5: 37). 요한은 또한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변화하는 모습을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지켜본 제자였다(마태복음 17: 1). 그런가하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지낸 제자였다(마태복음 26: 37).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을 때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요한과 야고보)만을 데리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제자들을 성에 보낼 때에도 베드로와 요한만을 보내셨다(누가복음 22: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유월절 만찬, 즉 최후의 만찬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바로 옆에 앉았으며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눕기까지 하였다. 요한복음 13: 23을 보면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요한이라고 하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했던 제자도 요한임에 틀림없다. 일각에서는 사도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로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품에 기대었던 사람이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이 있다.  

 

베드로와 함께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고 있는 요한.

 

요한은 예수님이 로마 병사들에게 잡혀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을 때 함께 베드로와 함께 따라갔다고 한다. 요한복음 18: 15에 기록된 것을 보면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바로 십자가 아래까지 다가갔던 제자가 바로 요한이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9: 26-27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마리아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시의 관례로서 마리아가 요한의 이모가 되므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즉, 그로부터 마리아는 요한의 수양어머니(Foster mother)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코르크의 리슬베인 마을의 공동묘지에 있는 골고다의 그리스도 조각. 성모와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 요한


성경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요한이 제자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무덤에 달려가 무덤이 비어 있음을 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막달라 마리아의 전하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무덤으로 출발하였으나 요한의 걸음이 빨라 무덤에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제자들 중에서 요한만이 예수께서 진실로 부활하신 것을 처음으로 믿었다는 것이다(요한복음 20: 2-10). 요한은 예수께서 승천하신후 모두들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이 불길처럼 내려 온 것을 경험하였다. 그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섰다.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성전 앞에 있던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으며(사도행전 3: 1) 베드로와 함께 감옥에 갇혔고(사도행전 4: 3) 베드로와 함께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사도행전 8: 14).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는 베드로와 요한

 

성경에는 요한이 얼마동안 유대 땅에서 사역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요한이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사역을 했다면 12년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도행전 12장 1-17을 보면 헤롯 아그리파(Herod Agrippa)가 초대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치려고 생각하여 우선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칼로 죽였으며 이를 보고 유태인들이 기뻐하자 헤롯은 다시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고 되어 있다. 아무튼 헤롯의 박해로 사도들은 로마제국의 다른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일부 신학자들은 그 때에 요한도 박해를 피하여 소아시아로 떠났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소아시아의 에베소에는 이미 사도 바울이 사역을 하여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18: 27절을 보면 바울의 전도를 받은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가 이미 사역에 동참하고 있었으며 그밖에 다른 형제들도 함께 전도에 힘썼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와 요한


주후 51년경, 소아시아에 갔던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사도들의 모임에 참석하였다. 그만큼 교회 일에 열심이었다. 사도 바울은 요한에 대하여 ‘베드로와 공의로운 야고보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요한이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수 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2: 9에서 바울은 요한을 ‘기둥같이 여긴다’고 말하였다. 즉,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의미라고 해석할수 있다. 실제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가장 분명하게 보아온 사람으로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유태인들의 지도자였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 요한은 자기에게 하늘의 계시가 내린 것을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 9에 보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말한 것이 그같은 증거이다. 결국, 요한은 구약시대의 다니엘처럼 예언적 환상을 받은 사도였다.

 

밧모 섬에서의 요한 . 계시록을 받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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