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구 인네레 슈타트

1. 비엔나의 심장과 영혼인 첸트룸(Zentrum)

정준극 2009. 7. 24. 12:09

흥미 있는 비엔나 제1구의 거리 이름 유래

비엔나의 심장과 영혼인 첸트룸(Zentrum)

L'arte delle facciate di Vienne

 

비엔나의 심장인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비엔나는 모두 23개 구(Bezirk)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제1구인 인네레 슈타트(Innere Stadt)는 첸트룸(Zentrum: 도심)이라고도 하는 역사적인 구시가지이다. 구시가지는 링 슈트라쎄(Ring Strasse)와 프란츠 요셉 운하(Franz Josefs Kai)가 마치 반지(링)처럼 생겨서 도심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다. 링슈트라쎄는 19세기에 조성된 대로이다. 링슈트라쎄를 따라 비엔나를 대표하는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인너 서클(Inner Circle)인 링슈트라쎄에 메아리치듯 바깥 쪽으로는 귀어텔(Gürtel)이 링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귀어텔은 벨트(허리띠)라는 뜻이다. 인너 서클로부터 외곽으로 나가는 대로들이 마치 방사선처럼 뻗어 있다. 예를 들면 마리아힐르퍼슈트라쎄(Mariahilferstrasse), 뷔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 배링거슈트라쎄, 비엔차일레(Wienzeile) 등이다. 비엔차일레는 도심의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남서부 쪽의 쇤브룬 궁전으로 이어지는 대로이다. 원래는 빈강(Wien Fluss)가 흐르던 곳이었으나 빈강의 일부는 복개를 하고 일부는 전철 철로를 만들기 위해 정비했고 나머지 일부만이 수로 구실을 하도록 만들었다.

 

브라운슈봐이그가쎄와 히칭 사이의 U6 노선. 한쪽은 아직도 빈강이 졸졸 흐르고 있다.

 

비엔나는 서쪽으로 비엔나 숲(비너봘트: Wiener Wald)이 둘러쳐 있고 동쪽으로는 도나우 강이 막아 있는 천연의 요새라고 볼수 있다. 도나우 강에는 본류와 분리되어서 도나우 운하(Donau Kanal)가 설치되어 있으며 또 하나의 도나우인 알테 도나우(Alte Donau)가 있다. 비엔나 사람들은 제1구만이 비엔나의 중심이며 나머지는 포아슈태테(Vorstädte), 즉 교외(郊外)라고 부르고있다. 오늘날 사실상 제2구로부터 제9구까지는 도심지역과 다름없지만 비엔나 사람들은 이 지역을 포아슈태테라고 부르고 있다. 비엔나의 제1구에 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랑이다. 마치 학위를 딴 것과 마찬가지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제1구의 사람들은 자기의 명함에 1구의 주소를 적어 넣고 우쭐해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와, 1구에 사시네!'라면서 겉으로나마 약간의 존경심을 보여주면 더 우쭐해 한다. 그만큼 1구에 사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상 1구는 비엔나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1구에 대하여 L'arte delle facciate di Vienne 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비엔나에서 가장 번화한 그라벤의 거리 모습. 가운데 보이는 황금 탑이 페스트조일레(페스트탑)

 

비엔나의 전체 시민은 2009년 현재 1백 70만을 넘지 않는다. 그중에서 제1구 인네레 슈타트의 주민은 전체 시민의 1백분의 1인 1만 7천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외국인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구의 주민들은 1구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마치 박사학위를 땄거나 귀족의 신분을 얻은 것처럼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1구는 비엔나의 심장이며 영혼이다. 1구에 있는 슈타츠오퍼는 비엔나의 심장이며 슈테판스돔은 비엔나의 영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1구의 거리들을 살펴보았다. 거리의 이름이 어떤 연유로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비엔나 더 알기’의 지름길이다. 거리 이름은 편의상 알파벳 순서로 분류하였으며 특히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참고자료로서 덧 붙여 설명했다. 제1구의 거리 이름에 대한 유래만 알고 있어도 비엔나, 나아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비엔나의 영혼인 슈테판성당(슈테판스돔)

 

***********************************************************************************

아브라함...가쎄로부터 아우빈켈까지

 

- 아브라함-아-잔크타-클라라-가쎄(Abraham-a-Sancta-Clara-Gasse):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설교가인 아브라함-아-산크타(산타)-클라라(1644-1709)를 기념하여 1903년에 붙인 거리이름이다. 그는 죄와 회개를 주제로 설교하여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다. 알베르티나 쪽에 나 있는 궁정공원(부르크가르텐)의 입구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설교집은 오늘날에도 가톨릭교회의 귀중한 설교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아브라함 아 잔크타 클라라 가쎄는 부르크테아터 뒤편, 미노리텐키르헤와의 사이에 있다. [참고자료 1]

 

아브라함 아 잔크타 클라라 가쎄

          

- 아카데미슈트라쎄(Akademiestrasse): 1860-1862년에 이곳에 있던 상업아카데미(Handelsakademie)를 기념하여 1862년에 붙인 거리이름이다. 캐른트너 링과 말러슈트라쎄를 연결하는 짧은 길이다.

 

아카데미슈트라쎄

 

- 알베르티나플라츠(Albertinaplatz): 1877년부터 1920년까지는 알브레헤츠플라츠(Albrechtsplatz)라고 불렀으며 1934년에는 레볼루치온스플라츠(Revolutionsplatz: 혁명광장)이라고 부르다가 그후로 알베르티나 미술관을 기념하여 알베르티나플라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알베르티나플라츠에는 유명한 ‘전쟁과 파치슴을 경계하는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알베르티나플라츠는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바로 뒤편에 있다.

 

알베르티나플라츠. 옆은 헬무트 칠크 플라츠

알베르티나플라츠의 전쟁과 파치슴을 경계하는 조형물

 

[참고자료 2] 알베르티나


- 알테 봘피슈가쎄(Alte Walfischgasse): 사연이 분명치 않다. 봘피슈는 고래를 말한다. 바다는 구경도 할수 없는 비엔나가 고래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모르겠다. 고래를 피슈(Fisch: 생선)이라고 본 것도 흥미롭다. 그래서 요즘엔 고래라는 단어를 봘티어(Waltier)라고 부른다. 티어는 포유동물을 말한다.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에서 캐른트너슈트라쎄를 따라 슈테판성당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말러슈트라쎄 다음번으로 오른쪽에 있는 길이 봘피슈가쎄이다. 봘피슈가쎄로 조금 들어가다보면 막다른 골목길이 하나 갈라져 있다. 그것이 알테 봘피슈가쎄이다.구약성경에 고래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하는 요나를 생각하여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실제로 이 거리에 예전에 Zum Walfisch라는 간판을 내건 집이 있었고 그 집의 벽면에는 고래와 요나에 대한 그림(Jonas mit dem Walfisch)가 있었다고 한다.,


알테 봘피슈가쎄


- 암 게슈타데(Am Gestade): 게슈타데는 퀴스테(Küste) 또는 우퍼(Ufer)와 같은 뜻으로 강변(슈트란트: Strand), 해변을 말한다. 암 게슈타데는 도나우 강변(우리 식으로 둔치)에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성모에게 봉헌한 암 게슈타데 교회(Kirche am Gestade)가 있다. 1848년까지는 An der Gstetten(안 데어 그슈테텐)이라고 불렀으나 1863년에 Gstetten이라는 방언 대신에 표준어인 Gestade를 사용하였다. 비엔나에 있는 체코인들의 센터이다. [참고자료 3]

 

암 게슈타데에서 내려다 본 거리.

 

- 암 호프(Am Hof): 궁전(Hof)이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비엔나를 오스트라키의 수도로 삼은 바벤버그 왕조가 이곳에 궁전을 짓고 정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자료 4]

 

암 호프 광장. 바벤버그 왕조가 처음 이곳에 궁전을 세우고 비엔나를 오스트마크의 수도로 정하였다.

                

- 안 데어 휠벤(An der Hülben): 기록에 의하면 1367년에는 Auf der Hülben이라고 불렀다고 되어 있다. 이곳에 있던 연못이름에서 연유한 명칭이었다. 현재의 안 데어 휠벤은 1909년부터 공식적으로 부르게 되었다.

 

An der Hülben, wie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안나가쎄(Annagasse): 기록에 의하면 1290년에 피핑거슈트라쎄(Pippingerstrasse)라고 부르다가 1750년 이후부터는 이곳에 있는 성안나교회(St Anna Kirche)와 연관하여 안나가쎄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에는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를 기리는 교회가 더러 있다. [참고자료 5]

 

안나가쎄. 케른트너슈트라쎄에서 들어가는 길. 오른쪽은 팔레 에스터하지

 

- 아우어슈페르크슈트라쎄(Auerspergstrasse): 1862년 티롤의 영주이며 육군원수인 요한 아담 폰 아우어슈페르크(Johann Adam von Auersperg) 대공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이곳에 있는 ‘장미의 기사궁전'(Palais Rosenkavalier)을 매입하여 아우어슈페르크 궁전(Palais Auersperg)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거주하였다. 그 이전에는 파라데플라츠(Paradeplatz)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거리에서 제국의 퍼레이드가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암 글라시스(Am Glacis)라고 부르던 시기도 있었다. 이곳에 비엔나 도심을 보호하는 보루의 제방(Glacis)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6]

 

아우어슈페르크슈트라쎄. 왼편이 팔레 아우어슈페르크

 

- 아우구스티너바슈타이(Augustinerbastei): 바슈타이는 성벽에 연결된 보루 또는 망루 요새를 말한다. 이곳에 1548-1552년에 건조한 비엔나 방어요새가 있었다. 이 요새는 1863년 터키의 제2차 공성 때에 파손되어 현재는 망루로 올라가는 축대만이 간신히 남아 있다.

 

전쟁 중에 파괴된 알브레헤트 대공 저택(현재의 알베르티나)

 

- 아우구스티너슈트라쎄(Augustinerstrasse): 자허호텔이 있는 곳으로부터 아우구스틴 교회에 이르기까지의 골목길이다. 이곳에 아우구스틴교회와 함께 있는 아우구스틴수도원으로부터 연유한 이름이다. 1862년부터 아우구스티너슈트라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세에는 호흐슈트라쎄(Hochstrasse: 대로)라고 불렀으면 1547년까지는 아우구스티너가쎄라고 불렀다. [참고자료 7]

 

아우구스티너슈트라쎄

 

- 아우빈켈(Auwinkel): 1547년부터 1786년까지 이곳에 있었던 돼지 도축장인 Im Sauwinkel(임 자우빈켈)을 기념하여 1862년에 아우빈켈이라는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다. 자우(Sau)는 돼지라는 뜻인데 거리 이름으로 돼지라는 단어를 넣은 것이 미안하여 짐짓 발음도 비슷한 아우(Au: 들판)라는 단어를 붙였다.

 

아우빈켈. 슈테판스돔 주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