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구 인네레 슈타트

참고자료 5 성안나교회(Annakirche)

정준극 2009. 7. 24. 12:21

참고자료 5

 

안나가쎄와

안나교회(Annakirche)

 

안나가쎄의 성안나교회

 

캐른트너슈트라쎄의 슈타츠오프(국립오페라극장)이 있는 곳에서 슈테판성당 쪽으로 내려오다가 오른 쪽으로 말러슈트라쎄, 봘피슈가쎄, 크루거슈트라쎄를 차례로 지나면 다음으로 나오는 큰 골목길이 안나가쎄(Annagasse)이다. 안나가쎄는 이곳에 있는 성안나교회(안나키르헤)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성안나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를 말한다. 성경에는 마리아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외경에는 마리아의 어머니가 안나이며 아버지는 요아힘이라는 기록이 있다. 비엔나의 안나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성안나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안나교회에는 성안나의 손가락뼈가 보관되어 있어서 매년 7월 26일 축일에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비엔나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캐른트너슈트라쎄의 지류에 있으면서도 교회안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조용하다. 성안나교회의 매력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한적한 시골 교회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안나키르헤의 중앙제단

 

안나교회가 있는 자리에는 일찍이 1320년부터 목조 교회가 서 있었다. 그것을 당시 비엔나 성주의 신앙심 깊은 부인인 엘리자베트 봐르테나우어(Elisabeth Wartenauer)가 개축하고 성안나교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엔나 사람들은 일찍부터 성모의 친정 어머니인 성안나를 기리고 그에게 헌신하는 신앙이 있었다. 그러다가 1518년, 고틱교회로 개축하여 성안나의 축일인 7월 26일에 봉헌하므로서 성안나교회는 비엔나의 자랑스러운 교회로 알려지게 되었다. 성안나교회는 처음에 ‘가난한 클레어 수녀회’가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예수회가 운영하게 되었으며 1906년부터는 성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산하 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고틱 건물이었던 성안나교회는 1629-1634년 예수회가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하였다. 1747년 뜻하지 아니한 화재로 고통을 겪었으나 곧 복구에 들어가 크리스토프 타우슈(Christoph Tausch)가 트롱페 뢰유(trompe l'oil) 기법을 사용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개조되었다. 1747년 6월 25일에 일어난 화재는 벼락이 첨탑에 떨어져 불이 붙어 일어난 것이었다. 그때 지붕의 상당부분이 불에 탔지만 내부 천정의 프레스코화는 손상을 입지 않아 모두들 기적이라고 말했다. 1751년에는 내부가 촛불의 그을음으로 너무 어두워져서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가졌다.


안나키르헤의 성안나 조각

 

중앙제단에는 성안나가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는 목제조각이 있다. 일찍이 1510년에 만들어 봉헌한 것이다. 오르간은 오스트리아의 오르간 제작자인 요한 헨케(Johann Hencke)가 만든 것이다. 성안나교회는 다니엘 그란(Daniel Gran)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프레스코화의 토픽은 성안나의 영광, 성모 마리아의 영광, 아기 예수의 영광이다. 다니엘 그란의 프레스코화는 1969-1970년에 보수되었다.

 

안나가쎄는 좁을 골목이어서 안나키르헤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