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벤버거슈트라쎄로부터 부르크링까지
마로니에 낙엽이 덮인 링슈트라쎄. 멀리 시청의 첨탑이 보인다. (사진: 정준극). 마로니에 열매는 꼭 우리나라 알밤처럼 생겼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 떨어진 마로니에 열매를 밤인줄 알고 주서다가 삶아 먹고 배탈이 난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 바벤버거슈트라쎄(Babenbergerstrasse): 바벤버그 왕조를 기념하여 1863년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1863년은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이 있던 해이다. [참고자료 8]
바벤버거슈트라쎄
- 배커슈트라쎄(Bäckerstrasse): 이곳에는 14세기부터 빵 만드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래서 1862년 제빵인 들의 거리라는 뜻에서 배커슈트라쎄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게크 뒤편에 뻗어 있는 길이다.
배커슈트라쎄 9번지 카페 알트 빈의 실내. 포스터와 그림들을 잔뜩 붙여놓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 발가쎄(Ballgasse): 발가쎄라고 해서 손과 발의 발과 관련이 있는 거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런가하면 발이라고 하니까 무도회와 연관짓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것도 아니다. 1547년 이곳에 있던 발하우스(배드민튼과 같은 구기경기장)에서 비롯한 거리이름이다.
발가쎄
- 발하우스플라츠(Ballhausplatz): 이곳에 있던 발하우스를 기념하여 1906년부터 발하우스플라츠라고 부르게 되었다. 1848년에는 한때 레볼루치온스플라츠(Revolutionsplatz: 혁명광장)이라고 불렀다. 1848년 3월 혁명 때에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공화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발하우스플라츠는 폭스가르텐 동편, 알테 호프부르크와 만나는 곳에 있다. 오스트리아 정치 1번지이다. 수상집무실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9]
발하우스플라츠
- 방크가쎄(Bankgasse): 1820-1822년에 건립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은행이 있었던 것을 기념하여 1862년에 방크가쎄(은행로)라고 불렀다. 궁정극장(부르크테아터) 뒤편에 나 있는 길이다.
슈타트팔레 리히텐슈타인. 방크가쎄에 있다. 부르크테아터 뒤편이다.
- 바르바라가쎄(Barbaragasse): 이곳에 있었던 바르바라교회(Barbarakirche)를 기념하여 1862년부터 붙인 이름이다.
바르바라가쎄
- 바르텐슈타인가쎄(Bartensteingasse): 샤를르 6세 황제 시대에 활동했던 정치가 요한 크리스티안 바르텐슈타인(Johann Christian Bartenstein) 남작을 기념하여 1873년에 붙인 이름이다. 바르텐슈타인 남작은 샤를르 6세의 이른바 국사조치(Pragmatic Sanction)를 적극 지지하여 필요한 정치적 조치를 마련했던 인물이다. 국사조치란 남자 황위 후계자가 없으면 여자도 황제가 될수 있다는 규정이다. 아들이 없는 샤를르 6세가 큰딸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평화적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를 위양하기 위해 공포한 칙령이다.
바르텐슈타인가쎄와 리흐텐펠스가쎄의 교차로에 있는 아름다운 건물
- 바우에른마르크트(Bauernmarkt): 이곳은 1440년 이래 농부들이 농산물을 팔던 시장이었다. 그러다가 1862년부터 바우에른마르크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페터스키르헤 옆길로부터 도나우 카날 방향으로 뻗어 있는 길이다.
바우에른마르크트
- 베토벤플라츠(Beethovenplatz): 위대한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기념하는 광장이다. 1904년에 베토벤 기념상을 건립하고 베토벤플라츠(베토벤광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슈베르트링과 로트링거 슈트라쎄 중간에 있다. [참고자료 10]
베토벤플라츠와 베토벤 기념상
- 벨라리아슈트라쎄(Bellariastrasse): 호프부르크 궁전의 부속되어 있던 벨라리아(Bellaria)라는 램프를 기념하여 1869년에 붙인 거리 이름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말년에 이르러 몸이 비대해지자 호프부르크의 거처에 가기 위해 마차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 조차 힘들어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프부르크의 아말리엔트락트(아말리아棟)에 마차가 2층까지 올라갈수 있는 램프를 설치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마차로 램프를 거쳐 2층(우리 식으로 1층)에 올라가 마차에서 내린후 짐짓 심호흡을 하며 공기가 참 좋다고 말하였다. 벨라리아라는 말은 ‘아름다운 공기’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램프 앞의 길을 벨라리아슈트라쎄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2층으로 올라가는 램프가 철거되어 있다. 더 이상 마차나 자동차가 올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벨라리아슈트라쎄와 전차 46번 정류장
- 비버슈트라쎄(Biberstrasse): 중세에 호적을 관장하던 관청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1번지는 구우편전신국 건물이었고 2번지가 카페 프뤼켈이다. 13번지는 포스트슈파르가쎄이고 16번지는 한델스캄머 건물이다. 17번지는 연방국토개발성이다.
비버슈트라쎄
- 블루멘슈토크가쎄(Blumenstockgasse): 이곳에 있던 Zum alten Blumenstock(옛 꽃항아리) 여관의 이름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1862년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블루멘슈토크가쎄. 카이저호프 빈 식당이 있다.
- 블루트가쎄(Blutgasse): '피의 거리'라는 의미이다. 1368년부터 1392년까지는 코트게쎌(Kothgässel)이라고 불렀으며 그 후에는 코르게쎌라인(Chorgässelein)이라고 부르다가 19세기 초부터 블루트가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유에 대하여는 분명치 않으면 다만 전설로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1312년에 이곳에 본부를 둔 프랑스템플기사단(French Chivalric Order of Knights Templar)이 당국의 박해를 받아서 모두 학살될 때에 그들이 흘린 피가 거리를 메워서 블루트가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이 있으며 또 하나의 전설은 이곳에 일찍이 이교도 사원이 있었는데 산사람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피가 흘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블루트는 블라우트(Blout)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인데 블라우트는 산제물로 바치는 사람을 의미한다. 블루트가쎄 건축물의 특색은 이른바 두르흐호이저(Durchhäuser)이다. 집과 집 또는 집과 거리 사이에 파싸지를 설치하여 한 개, 또는 두 개의 안뜰(Hof)을 통과하여 다음 집이나 거리로 연결하는 건축양식이다. 블루트가쎄의 파싸지는 패리히스호프(Fahrichshof)와 징거슈트라쎄로 연결되어 있다. 블루트가쎄에는 7채의 중세의 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전쟁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나 196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중에는 슈베르트와 친구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Zurlustigen Blunze라는 주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파트 겸 화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루트가쎄. 골목 끝이 징거슈트라쎄이다.
- 보그너가쎄(Bognergasse): 보그너는 활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중세로부터 이곳에 활장이들이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1563년부터 보그너가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때는 칼만드는 사람들도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슈베르트훼게른(Schwertfegern)이라고 불렀다.
보그너가쎄 가젤레 의상실. 건물 모퉁이의 조각이 아름답다.
- 뵈르제가쎄(Börsegasse): 1874-1877년 건설된 증권거래소(뵈르제)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뵈르제의 건설이 계획된 1870년부터 뵈르제가쎄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엔나 뵈르제의 주소는 쇼텐링 16번지이다. [참고자료 11]
- 뵈르제플라츠(Börseplatz): 뵈르제가쎄와 같은 명분에서 붙인 이름이다.
뵈르가쎄 뒤편길. 오른편은 헤르만 그마이너 파르크.
- 뵈젠도르퍼슈트라쎄(Bösendorferstrasse): 세계적 피아노인 뵈젠도르퍼를 제조한 이그나즈(Ignaz)와 루드비히 뵈젠도르퍼(Ludwig Bösendorfer) 부자의 이름을 빌여 1919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명칭이다. 그 전에는 기젤라슈트라쎄(Giselastrasse)라고 불렀다. 기젤라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비의 둘째 딸의 이름이다. 캐른트너링에서 비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로 올라가다가 첫 번째 오른쪽으로 있는 길이다. [참고자료 12]
뵈젠도르퍼슈트라쎄 3번지. 빨간 원에는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1903년부터 1933년까지 살았고 세상을 떠난 집이라는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 브란트슈태테(Brandstätte): 1373년 이곳에서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하여 모든 건물들이 잿더미가 된 것을 기억하여 1876년에 붙인 이름이다. 브란트슈태테는 ‘화재장소’라는 뜻이다. 페터스키르헤 뒤편에 있다.
브란트슈태테 9번지(투흐라우벤 10번지)의 카페 코르브
- 브로이너슈트라쎄(Bräunerstrasse): 1642년에는 브라이텐슈트라쎄(넓은 길), 1664년에는 프라이텐슈트라쎄(Preitenstrasse), 1701년에는 브로이너슈트라쎄(Breunerstrasse), 1710년에는 브라이너슈트라쎄(Breinerstrasse)라고 부르다가 1862년부터 브로이너슈트라쎄로 부르기 시작했다. 요셉스플라츠에서 시작하는 합스부르거가쎄와 도로테어가쎄 사이에 있다. 브로이너슈트라쎄 3번지는 위대한 배우 겸 극작가 겸 풍자가인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의 생가이다.
브로이너슈트라쎄 3번지.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의 생가이다.
- 브루노-크라이스키-가쎄(Bruno-Kreisky-Gasse): 오스트리아 수상을 지낸 브루노 크라이스키를 기념하여 1991년부터 붙인 이름이다. 브루노 크라이스키 플라츠(Bruno-Kreisky-Platz)도 같은 연유이다.
브루노 크라이스키 플라츠의 기념분수. 오른편은 연방수상 집무실
- Burgring(부르크링): 비엔나 링슈트라쎄의 일부로서 호푸부르크의 앞 대로에 붙인 이름이다. 부르크는 궁전이란 뜻이다. 부르크링은 에센바흐가쎄(Eschenbachgasse)로부터 벨라리아슈트라쎄(Bellariastrasse)까지의 대로를 말한다. [참고자료 13]
영웅광장(헬덴플라츠)로 통하는 부르크토르(궁정문)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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