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구 인네레 슈타트

참고자료 26 독트로 칼 렌너(Dr.-Karl-Renner)

정준극 2009. 7. 30. 16:14

참고자료 26

 

독토르 칼 렌너 링과

2차대전후 초대 대통령 독트로 칼 렌너(Dr.-Karl-Renner)

 

2차대전후 오스트리아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칼 렌너 박사

 

1870년 12월 14일, 남부 모라비아의 운터탄노비츠(Untertannowitz)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1950년 12월 31일 되블링에서 세상을 떠난 칼 렌너는 1918-1920년과 1945년에 연방수상 겸 외상을 지냈고 1945년 12월에 연방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50년 1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 비엔나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가 되었으며 1907년부터는 제국국회의원(Reichstag)으로 정치적인 입지를 발전시켜 나갔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는 공화국으로 탈바꿈하였다. 칼 렌너는 오스트리아 제1공회국의 초대 수상이 되었다.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를 유지코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영토가 빠져나가고 경제가 침체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후 오스트리아제국의 운명을 협의하는 파리 생-제르망협상에 오스트리아 사절단을 이끌고 참석하여 오스트리아에게 최소의 피해가 오도록 노력하였다. 그후 그는 우익의 사민당을 이끌었으며 1938년에는 독일과의 합병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칼 렌너는 1920년부터 1934년까지 국회의원이었으며 1931-1933년간에는 초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를 기념하여서 링슈트라쎄의 국회의사당(팔라멘트) 앞길을 독토르 칼 렌너 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앙공동묘지의 칼 뤼거 교회와 그 앞의 역대 대통령 묘지. 칼 렌너도 이곳에 안치되었다. 아주 조그만 묘소이다.

 

칼 렌너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자면 역시 한도 끝도 없으므로 이만치서 그만 두고자 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렌너는 1950년 12월 31일 비엔나의 되블링에서 세상을 떠났다. 모두들 신년을 축하해야 하는 날, 오스트리아는 슬픈 뉴스를 들어야 했다. 칼 렌너는 중앙공동묘지의 칼 뤼거 교회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오스트리아 역대 대통령 묘지에 안장되었다. 테오도르 쾨르너(Theodor Körner)가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사회민주당은 렌너를 기념하여 정치연구아카데미로서 렌너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비엔나 시는 렌너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1950년에 칼-렌너-상을 신설하여 매년 국가에 공헌한 인물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저널리스트 클럽(ÖJC)은 1984년 렌너를 기념하여서 칼-렌너-언론상을 제정했다. 매2년마다 가장 뛰어난 활동을 한 언론인에게 주는 명예로운 상이다. 칼 렌너는 사회학, 경제학 및 정치과학에 대한 여러 저서를 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연방수상시절의 칼 렌너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