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구 인네레 슈타트

참고자료 28 토마스 에벤도르퍼(Thomas Ebendorfer)

정준극 2009. 8. 1. 04:28

참고자료 28

 

에벤도르퍼슈트라쎄와

종교역사학자 토마스 에벤도르퍼(Thomas Ebendorfer)

 

시청과 비엔나대학교 뒤편에 있는 에벤도르퍼슈트라쎄는 비엔나대학교의 신과대학장을 지낸 위대한 신학자 겸 역사학자인 토마스 에벤도르퍼(1388-1464)를 기려서 붙인 거리이름이다. 북부오스트리아의 하젤바흐(Haselbach)에서 태어난 그는 1412년 비엔나대학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428년에는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토마스 에벤도르퍼는 토마스 드 하젤바흐라고도 부른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 중인 1427년부터 이 대학교에서 역사와 라틴어를 강의했으며 신과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신과대학장에 임명되어 작고할 때까지 재직했다. 이와 함께 그는 비엔나대학교 교구신부였으며 슈테판성당의 설교자였다. 그러면서 비엔나 근교의 페르흐톨즈도르프(Perchtoldsdorf)와 팔켄슈타인(Falkenstein)의 순회성직자 겸 설교자로서 활동했다. 에벤도르퍼는 15세기의 가장 훌륭한 가톨릭 신학자로서 프라하에서 열린 후스파와의 논쟁에 가톨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처음에 프레데릭 3세 황제를 위해 수고했지만 교회와 신학에 대한 황제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여 황제가 위촉한 종교순회대사의 업무를 중도탈퇴하고 이후 황제에 대하여 반대견해를 피력하였다. 때문에 황제의 비밀스런 적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에벤도르퍼는 오히려 교황에게 순종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로마에 가서 교황으로부터 비엔나대학교에 대한 교회의 지지를 받아냈다. 얼마후 프레데릭 3세가 브란덴부르크의 알베르트와 전쟁을 벌일때 중재자로서 활동했으나 오히려 프레데릭 3세에게 더욱 큰 실망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 연유로 에벤도르퍼는 프레데릭 3세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나 그의 뛰어난 학식으로 학계와 종교계의 존경을 받았으므로 황제로서도 어찌할수 없었다. 에벤도르퍼는 위대한 역사학자였다. 그의 Chronicon Austriae(오스트리아 역대기)는 1400년부터 1463년까지의 오스트리아 역사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기술한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한 로마황제에 대한 저서도 썼다. Chronica regum Romanorum(로마황제 역대기)이다. 그는 수많은 설교집과 성경주해서 등을 남겼지만 일부는 아직 편집이 되지 않아 출판되지 않았다.

 

가톨릭 공의회. 토마스 에벤도르퍼는 오스트리아가톨릭을 대표하여 가톨릭 공의회에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