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그리고 종묘

신향로, 어로, 세자로

정준극 2009. 8. 4. 22:41

신향로, 어로, 세자로

 

웬만한 궁궐을 가보면 삼도(三道)라고 하여 박석을 깔아 만든 세갈래 길이 있다. 가운데 조금 높인 길이 왕의 전용도로인 어도(御道)이며 그 옆에 양쪽으로 있는 낮은 길이 신하들이 걸어 다니는 일반도로이다. 그런데 종묘는 사정이 다르다. 종묘의 외대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거칠고 넓적한 박석이 세가닥 길로 깔려 있다. 가운데 길이 약간 높고 양쪽 갈래는 약간 낮다.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니는 신로(神路)이다. 신위를 운반할 일이 있다면 신로를 이용해야 한다. 향, 축문, 폐백과 제사 예물도 신로를 따라 오갈수 있다. 그래서 신로는 신향로(神香路)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도의 오른쪽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이며 왼쪽 길을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어로와 세자로는 대기실인 재궁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재궁에서는 서협문을 통하여 정전과 영녕전으로 나갈수 있다. 외대문에서 시작한 신로는 정전과 영녕전 남쪽에 있는 대문에 이르고 이어 묘정의 상월대에 이른다. 정전과 영녕전의 남쪽 문을 신이 통과한 문이라고 하여 신문(神門)이라고 부른다. 외대문에서 정전에 이르는 신로에는 ‘가급적 가운데 신로로 걸어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적혀 있다. 그런데도 가운데 신로로 버젓이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종묘 직원들이 간혹 '그리로 걸어 다니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고 안내 표지판을 보시라고 권면하지만 그런 주의사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위대한 시민들이 있다. 한심하다. 당장 구속해서 유치장 신세를 져야지만 '아이고, 내가 잘못했네. 잘 알면서도 일부러 오기로 가운데 길로 걸어 갔으니!'라면서 후회할 것이다.

 

 종묘의 신도. 가운데 레인이 신향로, 오른쪽이 어로, 왼쪽이 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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