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그리고 종묘

그리고 종묘 밖의 풍경

정준극 2009. 8. 4. 22:51

그리고 종묘 밖의 풍경

 

종묘 입구의 광장(공원)은 그야말로 노인들의 천국이다. 무수한 노인들이 장기와 바둑에 여념이 없으며 개중에는 하릴없이 서성이는 노인네들도 어쩔수 없이 많다. 종묘 입구의 한쪽에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기념상이 높이 서있다. 왜 이곳에 월남 선생의 기념상을 세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수하게 모여있는 오늘의 노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인가? 아무튼 종묘 앞 광장(공원)은 우리나라 노인정책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무슨 연설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정치얘기였다. '어떻게 세운 대한민국인데...'라면서 좌파 친북세력을 질타하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 아마 6.25 참전 용사인것 같다. 성경을 들고 종말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옛날 노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의 노인들은 대부분 별로 궁색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옷들도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구두도 관찮은 것들을 신었다.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을 사 잡수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용돈은 조금씩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서울의 종묘 앞 광장은 런던의 하이드 파크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무슨 주장이든지 털어 놓을수가 있기 때문이다.

 

종묘 앞 큰 길(종로 3가길)의 노인들 단골 포장마차. 그래도 집에서 나올 때에는 점심 값이라도 챙겨서 나오시는 모양들이다. 다행히 예전처럼 무일푼 들은 아니시다. 예전에는 노인분들이 돈 한푼이 없어서 국수 한 그릇도 사먹지 못하고 쫄쫄 굶으셨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가두 연설차. 종묘 앞 광장에서 무려 두어시간 동안 반김 궐기대회. 반김이라고하면 누굴 말하는지 말안해도 잘 알것이다.

 

노인들 몇분이 둘러 앉아 한담을 하고 있는 옆에 잠시 붙어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며느리, 아들, 손주들 얘기였다. 주로 며느리의 눈치가 보여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는 얘기지만 어디 마땅히 갈곳도 없기 때문에 종로3가에서 하루종일 서성거리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손주들과는 대화가 끊어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같은 집에 사는데도 도무지 손주들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에는 우리나라 가정의 문제점들이 모두 제시되고 있었다. 노인분들의 얘기를 들을 대로 적자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 중단코자 한다. 그리고 종묘 제례와 제례악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다음 기회나 마나 제례는 용어부터가 너무 어려워서 설명하기조차 뭐하므로 생략할 생각이다. 그리고 종묘관리사무소에 대하여 한마디! 제발 노인들을 위한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 달라는 것이다. 그저 경내에서 배회만 하거나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때문이다. 강연회도 주선하고 참여 프로그램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바둑 삼매. 아무리 생각해도 바둑판과 돋자리를 돈 받고 빌려주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구청에서 준비했나? 공무원들이 설마 그런데 까지 신경을 쓸까?

우리나라 노인정책의 현주소. 바둑도 둘줄 모르는 분들은 한담으로 시간을 보낸다. 얘기가 귀찮은 분들은 그저 멍하니 혼자 앉아 계신다. 집에 가면 자식도 있고 손주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을 텐데...여기선 아무도 없다.

아니, 모두 어디서 오신분들일까?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비라도 오면 종로3가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서 소일한다. 정말로 무슨 대책이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킵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강연회가 한창이다. 김대중-노무현에 의한 좌파 10년의 친북반미를 규탄하는 모임이다. 모두들 '옳소'라고 크게 소리친다. 그리고 모두들 질서정연하게 경청하고 있다.  

횡보 염상섭 선생의 기념상이 있다. 대로쪽에 있다. 2010. 1 비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추운 겨울, 비오는 날의 종묘 앞 광장. 그래도 노인들이 많다. 2010. 1 

2010년 2월 어느날의 외대문 앞 풍경. 양지바른 담장 아래에 노인들이 많이 모여있다. 더러는 한가로운 얘기를 나누고 있도 더러는 가만히 햇볕을 쪼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