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구 인네레 슈타트

14. 파리저가쎄(Parisergasse)로부터

정준극 2009. 8. 11. 07:55

파리저가쎄(Parisergasse)로부터 프레디거가쎄(Predigergasse)까지

 

페터스키르헤에서 본 페터스플라츠. 앞에 나오는 길이 그라벤이다.

 

 - 파리저가쎄(Parisergasse): 이거리에 있던 Zum Parys(춤 파리스)라는 간판에서 유래한 거리이름이다. 파리스는 트로야의 왕 프리아무스(Priamus: Priam)의 아들로 헤라(Hera), 아테네(Athene), 아프로데티(Aphrodite) 등 세 여신의 다툼을 심판하게 되었다. 이후로 파리스(Parys: Paris)는 심판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파리스가 그리스의 헬렌과 함께 도망치는 바람에 유명한 트로이전쟁이 일어났다. 암호프의 아홉천사교회에서 유덴플라츠의 홀로코스트 조형물에 이르는 짧은 골목이다.

 

파리저가쎄

 

- 파르크링(Parkring): 링슈트라쎄의 한 부분으로 슈타트파르크(Stadtpark: 시립공원)가 있기 때문에 파르크(공원)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파르크링. 왼쪽에 마리오트 호텔. 오른쪽은 슈타트파르크

 

- 파싸우어 플라츠(Passauer Platz): 비엔나의 중심교구인 파싸우교구(Bistum Passau)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비스툼(Bistum)은 디외체제(Diözese: 교구)와 같은 의미이다. 파싸우교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는 마리아 암 게슈타데(Maria am Gestade) 교회이다. 마리아 암 게슈타데 앞의 작은 광장이 파사우어 플라츠이다.

 

파사우어 플라츠

 

- 페스탈로찌가쎄(Pestalozzigasse): 1865년부터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자인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찌(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를 기념하여 붙인 거리이름이다. 슈베르트링의 아카데미세 김나지움 옆 길이다.

 

페스탈로찌가쎄. 오른쪽의 붉은 벽돌 집이 아카데미세스 김나지움이다.

                        

- 페터스플라츠(Petersplatz): 1848년부터 페터스키르헤(Peterskirche) 앞에 있는 작은 광장을 페터스플라츠라고 불렀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는 일찍이 1137년부터 닭이나 오리등을 파는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1776년에는 페터스 키르흐호프(Peters Kirchhof)라고 불렀으며 1795년에는 암 페터(Am Peter)라고 불렀다. 키르흐호프라는 말은 교회에 딸린 작은 정원이나 뜰, 또는 우리식으로 마당을 말한다.

 

페터스키르헤 주위의 광장이 페터스플라츠이다.

 

- 페트라르카가쎄(Petrarca Gasse): 이탈리아의 첫 계관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r: 영국에서는 Petrarch)를 기념하여 1886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거리이름이다. 1881년부터는 건축가 훼르스텔을 기념하여 훼르스텔가쎄(Ferstelgasse)라고 불렀다. [참고자료 65]

 

 

- 필하모니커슈트라쎄(Philharmonikerstrasse): 1942년부터 비엔나 필하모닉 1백주년을 기념하여 부르기 시작한 거리이름이다.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뒷길이며 자허(Sacher)호텔의 앞길이다. 1862년까지는 아우구스티너슈트라쎄(Augustinerstrasse)라고 불렀었다. 아우구스틴교회(Augustinerkirche)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참고자료 66]

 

필하모니커슈트라쎄. 자허 호텔 앞 길이다.

 

- 플랑켄가쎄(Plankengasse): 플랑케(Planke)는 두꺼운 판자를 말하며 또는 판자로 막은 담을 말한다. 요셉 2세 황제는 1784년 카푸친 수도회 사람들을 비엔나에 와서 활동하도록 하고 수도원과 교회를 지을 땅을 호프부르크의 정원이었던 곳을 떼어 주었다. 그곳을 담장으로 둘렀기 때문에 플랑켄가쎄라는 이름이 붙었다. 카푸친 수도회는 이곳에 카푸친 교회와 수도원을 건설했다. 그전에는 노이부르거슈트라쎄(Neuburgerstrasse)라고 불렀다. 호프부르크의 신축건물인 노이에 호프부르크의 뒤편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플랑켄가쎄. 안쪽에 보이는 교회는 종교개혁교회

 

- 포스트가쎄(Postgasse): 1851년 완공한 중앙우편국(Hauptpostamts)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1862년부터 포스트가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전에는 보크가쎄(Bockgasse) 또는 도미니크교회에 연결된 광장이므로 도미니카너플라츠(Dominikanerplatz)라고 불렀었다.

 

포스트가쎄. 도미니카너키르헤 남쪽

 

- 프레디거가쎄(Predigergasse): 프레디거는 설교자, 특히 노방설교자를 말한다. 1226년에 이탈리아에서 도미니크 수도회의 프레디거파 수도승들이 와서 이곳에 있던 교회에서 설교를 했기 때문에 1854년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슈투벤토르에거 가깝다.

 

프레디거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