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66
필하모니커슈트라쎄와
비엔나 필하모닉(Vienna Philharmonic: Wiener Philarmoniker: 빈 필)
빈 필을 창설한 독일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오토 니콜라이(Otto Nikolai). 오페라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로서 유명하다.
세계적인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VPO)는 1842년 독일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오토 니콜라이(Otto Nikolai)가 청설했다.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닌 독일 사람이 창설했다는 것도 특별나다. 빈 필의 본부는 임페리얼 호텔 뒤편에 있는 비엔나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 악우회) 건물에 있다. 빈 필의 멤버는 전통적으로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선발한다. 선발 과정은 대단히 철저하다. 후보자는 최소한 3년 이상, 슈타츠오퍼의 오페라나 발레 공연에서 연주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빈 필에 응모서를 내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오디션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세계 정상의 빈 필(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VPO)가 비엔나 악우회(무직페어라인)의 황금 홀에서의 연주
빈 필의 전신은 1842년에 오토 니콜라이가 결성한 필하모닉 아카데미(Philarmonische Academie)이다. 정부의 어떤 기구에도 속하거나 또는 귀족의 산하에 속하지 아니한 완전 독립형 민간 오케스트라였다. 필하모닉 아카데미는 모든 결정을 단원들이 민주적으로 처리한다. 그러한 전통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어서 지휘자를 선정하는 문제 등은 전체 단원의 투표로 결정한다. 당시 궁정오케스트라 등에서 민주적인 사무처리가 있을수 없었던 것과는 크게 대조가 되었다. 5년후인 1847년 니콜라이가 비엔나를 떠나자 오케스트라는 지도자를 잃고 한순간 날개를 접어야 했다. 그러다가 1860년, 칼 안톤 에커르트(Karl Anton Eckert)라는 지휘자가 등장하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살리자고 소리 높이 주장함으로서 빈 필은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섰다. 에커르트는 예매제 콘서트를 기획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활력을 되찾아 계속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 1875년부터 1898년까지 무려 13년동안에는 한스 리히터(Hans Richter)가 상임지휘자였다. 이 기간중에 필하모닉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2번과 제3번,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 등을 세계 초연하는 대단한 경력을 쌓았다. 한스 리히터의 후임으로는 구스타브 말러가 임명되었다. 말러는 1898년부터 1901년까지 3년동안 상임지휘자로서 활동했다. 말러의 재임기간 중에 오케스트라는 창설된후 처음으로 외국연주여행을 떠났다. 1900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에서 연주회를 가진 것이다. 비록 멀리는 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은 만방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날릴수 있어서 의기양양 및 자신만만해 했다. 이때로부터 필하모닉 아카데미의 오케스트라는 VPO(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분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말러 이후에는 펠릭스 봐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 클레멘스 크라우쓰(Clemens Krauss)와 같은 세계적 거장들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빈 필의 첫번째 외국 나들이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간것이다. 구스타브 말러가 지휘했다. 사진은 1900년의 파리 만국박람회장
1933년 이후에는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객원지휘자를 초청하였다. 세계적 명지휘자들이 빈 필을 지휘하게 되었다. 몇 명만 예로 든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한스 크나퍼츠부슈(Hans Knappertsbusch), 칼 뵘(Karl Böhm), 존 바르비롤리(John Barbirolli),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제임스 르바인(James Levine), 주빈 메타(Zubin Metha),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레오나드 번슈타인(Leonard Bernstein),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ti), 니콜라우스 하르논코트(Nikolaus Harnoncourt), 피엘 블레즈(Pierre Boulez), 로린 마젤(Lorin Maazel), 마리쓰 얀슨스(Mariss Jansons),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등이다. 대부분 객원지휘자들이 전후 세대임은 흥미로운 일이다. 카라얀과 뵘은 명예지휘자로 임명되었다. 번슈타인은 명예단원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1월 1일 이후, 빈 필은 비엔나신년음악회를 주관하여 왔다. 비엔나신년음악회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비엔나신년음악회’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빈 필의 본부인 비엔나 악우회(무직페어라인) 건물에 있는 황금홀. 빈 필의 비엔나신년음악회가 열리는 장소이다.
최근 유럽의 10개 경제전문지, 라디오 방송국, 일간지는 유럽 각국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바 있다. 빈 필이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라는 결과가 나왔다. 빈 필의 입장권은 미리 예약해도 사기가 힘들다. 주중 연주회의 티켓은 6년 전부터 예매한다. 주말 연주회의 티켓은 13년 전부터 예배한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임시연주회 티켓(Casual ticket)은 웹사이트를 통해서 구할수 있다. 물론 판매되는 티켓은 몇 장에 불과하므로 인터넷 접속에도 기민함이 필요하다. 빈 필 사무국은 단체 관객을 위해 교통, 숙소, 식사 등의 주선도 해준다. 여행사 역할도 함께 하는 것이다.
인기 정상의 빈 필이므로 빈 필을 소재로 한 기념주화의 발간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념주화는 매년 발행하고 있으며 액면의 단위는 네 가지가 있다. 기념주화는 액면 단위에 따라 규격과 디자인이 서로 다르다. 지금까지 발행된 금화 중에 가장 높은 액면가는 100 유로였다. 빈 필을 주제로 한 금화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 빈 필의 기념주화는 발행이 되자마자 수집가들이 몰아사가는 바람에 일반 사람들은 구경조차 하기가 힘들다.
빈 필의 본부가 있는 비엔나악우회 건물. 임페리얼 호텔 뒤편에 있다.
[소리와 악기]
빈 필의 소리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다르다고 한다. 어떤 악기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악기와는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다른 오케스트라에서는 스트링의 경우, 자기의 악기로 연주한다. 빈 필에서는 오케스트라의 것을 사용한다. 그래서 일관된 음을 낼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족보가 있는 훌륭한 현악기를 모두 보유할수는 없다. 하지만 빈 필은 스트링을 확보할 때에 대단히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거치므로 좋은 악기를 보관하고 있다. 어떤 현악기가 너무 낡거나 고장이 나서 못쓰게 되면 새로운 악기를 찾아 구매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더구나 까다롭게 선발한다. 다른 스트링들과 일치된 음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국립은행은 현재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4개를 빈 필에 영구임대하고 있다. 빈 필의 악기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빈 필의 악기를 심사하는 역할은 오래전부터 비엔나 음조문화연구소(Institute for Viennese Ton Culture) 및 비엔나 음악 및 공연예술대학교의 교수인 그레고르 비드홀름(Gregor Widholm)의 헌신적인 연구 때문이다. 비드홀름 교수는 빈 필의 악기에 대하여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오스트리아가 발행한 100 유로 기념 금화. 한쪽 면에는 빈 필의 비엔나 악우회 건물의 황금 홀에 있는 파이프 오프간을 그렸으며 다른 한편에는 빈 필의 악기들을 그렸다.
- 클라리넷은 독일 시스템의 악기를 사용한다. 보헤미아 시스템은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즐겨 사용한다. 보헤미아 시스템은 프랑스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 바쑨(파곳)은 세계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고 있는 헤켈(Heckel: 독일)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연주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빈 필에서는 헤켈 바쑨을 연주할 때에 비브라토를 넣지 않는다.
- 트럼펫은 로타리-발브로 된 것을 사용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로타리-발브 트럼펫을 사용한다.
- 튜바는 로터리-발브로 된 F 베이스 및 BB 플랫 콘트라베이스 튜바를 사용한다.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일부 오케스트라는 CC 피스톤-발브의 튜바를 선호하고 있다.
- 트럼본의 보어(Bore)는 일반적인 것보다 비교적 작은 것이다. 독일에서도 이러한 트럼본을 사용한다.
- 팀파니는 염소가죽으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합성가죽이 아니다.
-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는 배열에 있어서 금관악기(브라스) 뒤편에 위치한다. 극장 오케스트라의 전통적인 배치방식이다. 빈 필은 4 스트링, 또는 5 스트링의 더블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활은 언제나 언더핸드로 잡도록 하고 있다.
- 비엔나 오보에와 비엔나 혼(Horn)은 빈 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특별한 보어(구멍), 리드(Reed), 핑거링 시스템(손가락을 대는 위치)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콘서바토아(프렌치) 오보에와는 다르다. F키의 비엔나 혼(Horn)은 품펜벤틸(Pumpenventil)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피스톤 밸브와 비슷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로터리 밸브와는 달리 품펜벤틸로 된 혼은 유음(流音)의 레가토를 만들어 낸다. 비엔나 학파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전용상표와 같은 것이다. 비엔나 혼의 보어 역시 다른 현대적인 혼의 것보다 작다. 마치 밸브가 없는 자연 혼과 가깝다. 비엔나 혼은 사실상 19세기 중반부터 변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빈 필의 핵심 레퍼토리인 고전적 및 낭만적 레퍼토리의 연주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빈 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칼 안톤 에커르트
[단원] - 여성문제, 인종문제
빈 필은 음악적으로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이지만 단원문제에 있어서는 간혹 비판을 받고 있다. 빈 필은 1842년 창설된 이래 거의 1백년이 지나도록 단 한명의 여성 단원도 영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여성단체들은 이같은 빈 필의 정책이 남녀차별이라면서 비난해 왔다. 빈 필이 여성단원을 처음으로 영입한 것은 1997년이다. 하프주자인 안나 렐케스(Anna Lelkes)를 정식단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안나 렐케스는 무려 20년 동안 빈 필의 임시단원으로 근무하다가 정식단원으로 된 것이므로 참으로 오래동안 참으면서 지내왔다고 볼수 있다. 과거에 여성들이 빈 필의 멤버로 연주한 일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임시단원의 자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나 렐케스는 비록 20년 만에 정식단원으로 임명되었지만 빈 필의 여성금지정책을 깨트린 첫 번째 케이스가 된다. 안나 렐케스가 은퇴한후 또 다른 여성 하프주자가 채용되었다. 현재로서는 빈 필의 유일한 정식 여성단원이다. 빈 필의 빈약한 주장은 전체 멤버를 남성으로만 구성해야 원하는 소리를 얻을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빈 필을 지휘한 호주 출신의 사이몬 영(Simone Young)
게다가 빈 필은 창설이래 1백년이 넘도록 여성이 지휘한 전례가 없었다. 그같은 관습이 깨진 것은 겨우 빈필 창설 163년만인 2005년 1월이었다. 호주 출신의 여성 지휘자인 시몬 영(Simone Young)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빈 필을 지휘하였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빈 필은 전통적으로 외국인(소수민족)을 단원으로 임명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인 중심이며 간혹 독일인이 단원이 되었다. 그같은 전통이 깨진 것은 겨우 2001년이었다. 반쪽 아시아계의 남성이 바이올린 단원으로 임명되었다. 빈 필의 운영진은 인종이 통일되어야 훌륭한 음악을 창조해 낼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를 연주할 때에 피치카토 폴가와 같은 표정을 만들어내며 연주할수 있는 사람들은 오스트리아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1996년에 빈 필의 수석 플로티스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빈 필은 창설 때부터 비엔나 특유의 음악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가 빈 필에서 만들어 내는 비엔나 특유의 음악은 테크닉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에 바탕을 둔 것이다. 영혼은 하나의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인 뿌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에게는 유럽이라는 문화적 뿌리가 있다. 유럽의 남성백인이 작곡한 음악은 유럽의 남성백인이 연주해야 면면히 이어온 문화 정신을 살릴수 있다.” 한편, 2003년 어떤 오케스트라 단원은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 명의 여성단원은 이미 너무 많다. 만일 전체 단원의 20%가 여성이라면 우리 오케스트라는 망한다. 우리는 현재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참으로 유감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여러 단체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다.
역대 상임지휘자
1933년까지 빈 필은 상임지휘자를 둔 일이 없다. 매년 빈 필의 모든 콘서트를 지휘할 지휘자를 1년 단위로 선정하여 초청한다. 이들을 ‘주문지휘자’(Abonnementdirgigenten: 아본네멘트디리겐텐)라고 부른다. 어떤 때에는 1년 단위가 아니라 몇 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빈 필은 빈 필의 지휘자로 선정된 지휘자가 아닌 다른 지휘자의 지휘로 연주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다른 지휘자의 지휘로 연주회를 갖거나 취입을 하는 경우이다. 그러다가 1933년부터 주문지휘자 시스템을 버리고 매 콘서트마다 객원지휘자를 초빙하는 제도로 바꾸었다. 1842년 창설 때로부터 1933년 지휘자 초빙 제도를 변경할 때까지 빈 필의 역대 지휘자는 다음과 같다.
- 오토 니콜라이(Otto Nikolai: 1842-1848)
- 칼 안톤 에커트(Karl Anton Eckert: 1854-1857)
- 펠릭스 데소프(Felix Dessoff: 1860-1875)
-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1875-1882)
- 빌헬름 얀(Wilhelm Jahn: 1882-1883)
-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1883-1898)
-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98-1901)
- 요셉 헬메스버거(Joseph Hellmesberger: 1901-1903)
- 펠릭스 봐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908-1927)
-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 1927-1930)
-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 1929-1933)
클레멘스 크라우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930년대
1933년 이래 객원지휘자들은 다음과 같다. 무순.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프릿츠 부슈(Fritz Busch),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요젭 크립스(Josef Krips), 한스 크타퍼츠부슈(Hans Knappertsbusch), 존 바르비롤리 경(Sir John Barbirolli),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칼 뵘(Karl Böhm), 라파엘 쿠벨리크(Raphael Kubelik), 조지 첼(George Szell), 칼 슈리히트(Karl Schricht),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볼프강 자봘리슈(Wolfgang Sawallisch),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아드리안 불트 경(Sir Adrian Boult), 레오나드 번슈타인(Leonard Bernstein), 오자와 세이지(Ozawa Seiji),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로린 마젤(Lorin Maazel), 사이몬 래틀(Simon Rattle), 므스티슬라브 로스틀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안드레 프레빈(Andre Previn), 주세페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 바클라브 노이만(Vaclav Neumann),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ti), 조르주 프레트르(Georges Pretre),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니콜라우스 하르논코트(Nikolaus Harnoncourt), 존 엘리오트 가르디너(John Eliot Gardiner), 로저 노링턴(Roger Norrington), 마르첼로 비오티(Marcello Viotti), 크리스티안 틸레만(Christian Thielemann), 프란츠 벨저-뫼스트(Franz Welser-Moest), 다니엘르가티(Daniele Gatti), 길버트 카플란(Gilbert Kaplan), 마리쓰 얀손스(Mariss Jansons),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시몬 영(Simone Young), 조나단 노트(Jonathan Nott), 다니델 하딩(Daniel Harding), 주빈 메타(Zubin Metha), 빌리 보스코브스키(Willi Boskovsky),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 군터 봔트(Gunter Wand), 유진 올만디(Eugene Ormandy)
빈 필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과 3번의 세계 초연을 했다. 브람스는 빈 필의 사무실인 비엔나 악우회 건물에 작은 방을 갖고 매일 출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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