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프로방스의 막달라 마리아

정준극 2009. 9. 22. 12:19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프로방스에 와서 말년을 지냈다고 하는 상트 보메 계곡의 동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전설은 계속 이어졌다. 예수가 승천한지 14년 후에(왜 14년 후인지는 모르겠음) 유태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오빠 라사로와 언니 마르다, 72사도중의 한 사람으로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준 막시민(Maximin: 막시맹), 나서부터 소경되었으나 예수가 눈을 뜨게 해준 세돈(Sedon: 시도니우스), 마리아와 마르다의 몸종인 마르셀라(Marcella)를 돛도 없는 배에 태워 저 먼 바다로 추방하였다. 유태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 하는 이들을 증오하여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일설에는 아리마대의 요셉도 이들과 함께 추방당하였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 일행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안전하게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의 어떤 항구에 도착하였다. 지금의 마르세이유이다. 망망대해인 지중해에서 당장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죽음만을 기다리던 막달라 마리아 일행이 그 먼 프로방스 지방에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것은 하늘의 기적일수 밖에 없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 조각. 긴머리칼이 특징이다.

 

이 지방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 일행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주지 않고 배척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을 증거키로 결심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우상신전의 문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으나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나 웅변을 잘하여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예수가 행한 기적들, 예를 들어 라사로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일,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세돈의 눈을 뜨게 해준일 등을 얘기하자 사람들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막시민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우상을 섬기던 신전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막시민이 세상을 떠나자 라사로가 마르세이유 교회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성막시맹수도원의 막달라 마리아 교회(Basilique Sainte-Marie-Madeleine de Sainte-Maximin-la-Sainte-Maume) 

 

마르세이유에 간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게 지냈는가? 극도로 금식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간혹 천사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지탱할수 있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동굴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지만 하늘의 환상을 봄으로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고행으로 나날을 보내던 말년에는 천사들이 매일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를 옹위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가 식사를 제공하고 다시 내려왔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있으면 이 세상의 헛된 소리 때문에 정신을 빼앗길 것 같으므로 하늘로 가서 천상의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천상은 참회한 죄인들을 위한 영광과 기쁨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어떤 날 막달라 마리아가 고행을 하고 있는 광야의 산중 동굴에서 역시 고행을 하고 있던 어떤 은둔자가 무슨 생각을 했던지 자기 동굴에서 외출하여 생각보다 멀리 걷고 있었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천사들에게 옹위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놀라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천사들은 하늘의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팔을 불었다고 한다. 이토록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 은둔자는 잠시후 정신을 차리고 마르세이유로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가 본 모든 광경을 증거했다고 한다.

 

 상트 보메 동굴의 예배처. 프랑스에 온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에 힘쓰며 지냈다는 곳이다.

 

한편,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에서 바울이 처음 재판을 받아 추방당하기까지 2년 동안을 그를 기다리며 머물렀다고 한다. 그후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에서 에베소로 가서 사도 요한을 도와 힘써 일하였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요한복음의 1장에서부터 20장까지를 완성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곳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천사들에 의해 마르세이유에 있는 성막시민 교회로 기적적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막시민 교회에서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은후 숨을 거두었는데 그때 72세였다고 한다.

 

터키의 에베소에 있는 성모마리아가 살던 집이라는 곳. 막달라 마리아도 성모와 사도 요한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설이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마르세이유에도 가지 않았고 에베소에도 가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에서 성모를 모시고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주장도 있다. 899년 로마제국의 레오 6세 황제는 예루살렘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라고 믿어지는 성골(聖骨)들을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막달라 마리아를 성인으로 인정하여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이후부터였다. 한편, 1050년 프랑스의 베즐레이(Vezelay)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그 수도원에 있는 성골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 성골들이 9세기경 성지 예루살렘에서 바딜로(Badilo)라는 성자가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하면 얼마후에는 베즐레이의 다른 어떤 수도승이 프로방스의 성막시민 교회에 갔었는데 납골당에 있는 어떤 빈 석관에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Bethany)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수도승은 그것이 막달라 마리아의 석관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베즐레이 수도원에 있는 성골들은 바로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내세웠다.

 



베즐레이의 성막달라 마리아 교회. 남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틱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