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가나의 혼인잔치

정준극 2009. 9. 22. 12:03

가나의 혼인잔치

 

가나의 혼인잔치

 

예수가 처음으로 이적을 베푼 것은 가나(Cana)의 혼인잔치에서였다. 이처럼 중요한 혼인잔치인데 성경은 신랑과 신부가 누구인지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성경을 썼던 사람들이 신랑의 이름만 간단히 적어 놓았어도 아무런 혼란이 없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예수가 마치 신랑처럼 행동했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예수는 하인들을 시켜서 손님들에게 대접할 포도주를 만들게 했다. 물론 어머니 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그런 이적을 베풀었지만 마치 신랑처럼 행동했다는 것은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당시 예수는 삼십세 쯤 되었으니 결혼할 나이는 충분히 지났다. 또한 그렇다면 어머니 마리아의 위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마리아는 마치 혼주(婚主)인 것처럼 행동하였다는 것도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하인들을 시켜 신랑인 예수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만일 마리아가 단순히 혼인 집의 친척 중의 하나이거나 하객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런 지시를 내릴 처지가 아닌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이런저런 궁리 끝에 가나의 혼인잔치는 바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혼인잔치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파올로 베로네세(1528-1588) 작품. 한 가운데에 예수께서 마치 신랑처럼 앉아 있다.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장소에까지 따라갔다. 평소에 예수를 그렇게도 따르던 베드로 등 제자들은 요한만 빼고 모두 어디로 잠적한 마당에 막달라 마리아는 용기 있게 십자가의 아래에 까지 가서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있는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안식일 지난 다음날 새벽에 누구보다도 먼저 무덤을 찾아감으로서 부활한 예수를 가장 처음 먼저 만났다. 부인만이 그렇게 애통할수 있으며 장사를 지낼 때에 향류를 바를수 있고 남편을 잃은 여인만이 새벽에 무덤을 다시 찾아갈수 있었다는 것이다.

 

갈릴리 지방의 카프르 카나에 있는 '가나의 혼인잔치 기념 교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무덤에 장사 지낸 후 무덤을 지켰다. 그리고 부활한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보였다. 예수는 부활한 후에 어찌하여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것일까? 예수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가장 우선 만났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의 죽음을 깊이 애통하였다. 예수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으며 계속 애통하였다.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내 보이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1835년 러시아 알렉산더 안드레예비치 이바노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