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이런저런 에피소드

마리아복음서

정준극 2009. 9. 22. 17:40

마리아복음서 - 카이로의 기적

 

‘마리아복음서’(Gospel of Mary)라는 것이 있다. ‘도마복음서’나 ‘빌립복음서’와 마찬가지로 경외서(Apocryphal book)에 속하는 문서이다. 경외서(經外書) 또는 위경(僞經)이라고 하는 것들은 주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하여 쓴 것이기는 하지만 교회에 의해 여러 이유로 오늘날의 신약성경에는 들어가지 못한 경서 또는 서한 등을 말한다. 비유컨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복음서가 적자라면 ‘도마복음서’등은 서자 취급을 받아 온 경서들이다. 그나저나 ‘마리아복음서’는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쓴 문서이기 때문에 마리아복음서라고 부르는가, 그렇지 않으면 마리아라는 여인이 썼기 때문에 마리아복음서라고 부르는가? 우선은 마리아라는 여자가 쓴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복음서'라고 부른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기독교의 경전 중에서 비록 위경이지만 여자가 쓴 경전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그래서인지 '마리아복음서'는 여자를 무시해온 교회의 관습에 의해 푸대접을 받아 왔다고 볼수 있다. 적당한 인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하신 사도 바울도 여자에 대하여 한마디 한 것이 있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의 말씀이다. 기록하였으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로지 복종함이요'라고 되어있다.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은 신학자들마다 다르지만 외형적으로는 여성을 비하한 말씀이 아닐수 없다. 다시 '마리아복음서'로 돌아와서 ‘마리아복음서’는 비교적 근세인 1896년에 발견되었다. 어디서 처음 발견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카이로의 어떤 상인이 팔겠다고 내놓아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므로 이집트 인근에서 발견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카이로에서 ‘마리아복음서’가 나타난 것을 ‘카이로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을 독일의 신학자인 칼 라인하르트(Karl Reinhardt)라는 사람이 샀다. 한편, 신학자들은 나중에 카이로에서 나온 그 문서를 '마리아복음서'라고 불렀지만 오리지널에는 복음서(Gospel)라는 표현이 없다. 정경에 수록되어 있는 4복음서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복음서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술가들은 '회개하는 여인'의 주제로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안토니오 카노바 작품의 '회개하는 여인'.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그릴 때에는 간혹 악세사리처럼 해골이 등장한다. 죄가 잉태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에 적당한 표현이다.

                             

독일의 신학자인 칼 라인하르트가 카이로의 어떤 상인으로부터 산 ‘마리아복음서’는 실상 학문적으로 보아 복음서라고까지 말할 형편이 아닌 것이었다. 유명한 신학자인 앤드류 베른하르트(Andrew Bernhard)는 기본적으로 복음서라는 것은 “예수의 공생기간 3년 동안의 행적과 말씀(가르침)을 적은 것이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리아복음서’는 복음서로서의 자격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복음서'라는 것이 복음서로서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마리아복음서’의 전체 페이지가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에서 상당부분이 분실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마리아복음서’의 내용이 총괄적으로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카이로에서 발견된 ‘마리아복음서’는 검토 결과 5세기 경에 만든 파피루스에 쓴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후 120-180년 사이에 쓴 것을 5세기경에 누가 다시 파피루스에 적어 사본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마리아복음서'가 주후 120-180년 사이에 쓴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거의 1백년이 지난 후에 쓴 것이다. 그것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복사본에 복사본을 반복하며 5세기경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원래의 의미가 많이 변경되었을지도 모른다. 카이로에서 발견된(정확히 말하면 팔려고 카이로의 암시장에 나온) 사본들은 비단 ‘마리아복음서’뿐만 아니라 ‘요한비경’(Apocryphon of John),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서’(Sophia of Jesus Christ), ‘베드로 행전’(Act of Peter)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모두 콥틱어의 일종인 사히디(Sahidi)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1896년에 카이로에서 발견된 여러 서류들은 파피루스 베롤리넨시스(Papyrus Berolinensis) 8502 또는 아크밈 사본(Akhmim Codex)이라고 부른다. 이때 발견된 ‘마리아복음서’는 1938년(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해)에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파피루스에 적힌 마리아복음서의 한 페이지. 추가로 발견된 것.

                        

카이로에서 ‘마리아복음서’가 발견되자 학계는 놀라움과 흥분에 휩싸였다. 학자들은 새로운 복음서가 더 발견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학자들이 돈많은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너도 나도 땅을 파고 동굴을 뒤지며 성서발견에 몰두하였다. 마치 1849년 미국에서의 황금 러시와 흡사한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중에서 1897-1906년 사이에 그렌펠(Grenfell)과 헌트(Hunt)라는 사람이 그리스어로 쓰여진 ‘마리아복음서’의 몇 페이지를 추가로 새롭게 발견하였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새로 발견된 ‘마리아복음서’의 몇 페이지는 1983년에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추가로 발견된 ‘마리아복음서’의 몇 페이지를 P.Oxy. L 3525라는 코드로 부르고 있다. 하바드의 유명한 여류 역사학자인 카렌 킹(Karen King)은 '마리아복음서'의 사본이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은 그것이 예수가 활동하던 시절에 쓰여진 것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세기에 쓰여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에 있는 여인들은 성모 마리아, 사도 요한, 막달라 마리아라고 함. 왼편에는 아리마데의 요셉, 니고데모 등.

 

[어떤 마리아?]

 

‘마리아복음서’는 과연 누가 썼는가? 그 보다도 정작 궁금한 것은 ‘마리아복음서’에서 말하는 마리아는 과연 어떤 마리아를 말하는 것인가이다.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여자이름으로 미영이라는 것이 통계적으로 가장 흔한 이름인 것처럼 유태인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여자이름은 마리아(미리암)이다. 그러저나 과연 어떤 마리아를 말하는 것인가? 학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추측일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께서 대단히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생각되며 더구나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만나 예수로부터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는 중대한 사명을 누구보다도 먼저 받았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위상으로 보아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겠느냐는 짐작일 뿐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다. 누가복음 8장 1-2절을 보면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쫒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라는 기록이 나온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자리에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마태복음 27장 56절을 보면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라는 설명이 나온다. 십자가 주변에 있던 인물들 중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주목할 사항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누구보다도 먼저 만난 사람이다. 요한복음 20장 16절을 보면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라는 기록을 보면 알수 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미리암아'라고 불렀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두 아람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도 아람어로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하지만 아람어로도 마리아는 미리암일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입맞춤하고 있다. Fra Angelico 작품(부분)

 

‘마리아복음서’를 막달라 마리아가 썼으며 그 안에서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항은 다른 경외서에도 얼핏 언급되어 있는 사항이다. 그런 언급이야말로 막달라 마리아가 ‘마리아복음서’의 주인공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사항이다. 한편, 신학자인 드 뵈르(De Boer)는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와 경외서에 나와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에 대하여 “베드로가 마리아의 말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여자이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두 사람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베드로는 경외서인 ‘도마복음서’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입장을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스티스 소피아(Pistis Sophia)에는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분명하게 지적되어 있다. ‘마리아복음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 복음서에서 말하는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인 것을 확실히 알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그 여자, 즉 막달라 마리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고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도마복음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밤에 촛불을 켜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조르즈 드 라 투르 작품 

 

[어떤 내용?]

 

‘마리아복음서’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가?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남아 있는 몇 페이지를 가지고 전체 내용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떨어져 나갔는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처음 시작부분에서 6 페이지가 사라졌으며 중간에서도 4 페이지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인 카렌 킹에 의하면 ‘마리아복음서’의 첫 부분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의 대화로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제자들은 인간 성격의 본질이 무엇인지,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했다고 한다. 예수의 대답 부분은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내용을 모른다. 아무튼 예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떠났지만 제자들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하여 보충 설명을 하고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 뜻을 확실히 알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하는 한편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혹시 주님께서 그대에게만 비밀스럽게 특별히 가르쳐 주신 내용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자매여, 우리는 주님께서 다른 어느 여인보다도 그대를 더욱 사랑하신 것을 알고 있도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얘기해 주시라. 그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우리가 듣지 못했던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에게 주님과 비전(환상)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었다고 말하고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마리아복음서’에는 이 부분에 대하여 “마리아가 이르되 ‘나는 환상 중에 주님을 보았나이다. 나는 주님께 주여 오늘 나는 환상 중에 당신을 보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대답하여 가라사대 ‘복이 있도다. 그대는 나를 보고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도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주여 비전을 볼수 있는 것은 영혼(Soul)을 통해서이니까 아니면 정신(Spirit)을 통해서이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의 대화에서 마음 속의 자기, 즉 자아라는 것은 영혼과 정신과 마음이 합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비전은 마음을 통하여 볼수 있고 이해할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 부분 이후에는 사본이 분실되어 있어서 더 이상의 내용을 알수 없다. 그래서 다시 페이지가 시작될 때에는 마리아가 주님과 가졌던 대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대신에 자기의 비전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계시에 대하여 얘기를 했다. 계시라는 것은 영혼이 들림을 받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하나의 영혼이 마지막 안식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영혼을 막으려는 네 개의 세력과 대화를 하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마리아의 비전은 다른 제자들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아마도 다른 제자들은 마리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교황으로서의 베드로. 천국가는 열쇠를 들고 있다. Grao Vasco 작품.

 

안드레는 다른 형제들에게 ‘형제들이여, 마리아가 말한 내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시오. 나는 주님께서 이 말을 마리아에게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소. 왜냐하면 이같은 가르치심은 주님의 의중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라고 말하였다. 사실상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가 부활의 사실을 우선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제자들에게 알리도록 한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린 뭐냐? 3년동안 집 떠나서, 가족들과 헤어져서 예수를 따라 다녔는데 우릴 이렇게 대우하기냐?’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았다. 특히 베드로가 마리아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제치시고 일개 여자에게 비밀스럽게 말씀하시었을 리가 없다. 어찌하여 우리가 그 여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주님은 우리보다도 그 여자를 더 사랑하시는가?’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베드로도 참으로 마음이 좁은 남자라고 볼수 있다. 하바드의 역사학자 카렌 킹(Karen King)은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 경쟁의 상태였다’고 까지 말하였다. 하지만 카렌 킹은 막달라 마리아가 초대 교회를 부흥시킨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교회에서 여신도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주도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외서인 도마복음서,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등에도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로 대립적인 관계였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정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며 비교적(秘敎的)인 내용을 거부하고 여자가 '가르치는 권세'를 가지는 것을 반대하였다. 나중에 사도 바울도 여자에 대하여 별로 반가운 말을 하지 않았음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사도 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떠들지 말고 잠잠할 지어다'라는 식으로 여신도들을 비하하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 갔으니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을 찾아 볼수 없었다. William Hole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