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 - 1

정준극 2009. 9. 24. 15:11

막달라(Magdala) 마리아와 베다니(Bethany)의 마리아 - 1

 

성경에는 비슷한 이름이 많이 나온다. 누가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요한, 야고보(James), 유다, 마리아 등등... 특히 행적이나 배경이 비슷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그런 중에도 마리아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실상, 마리아라는 이름은 라틴어 및 독일어에서 비롯한 것이며 이스라엘에서의 히브리어 호칭은 미리암이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의 진짜 이름은 미리암이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인 중에서 혼돈을 주는 경우로는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의 과거 행적이 비슷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동일인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인물인지는 아직도 학자들 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감람산 아래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베다니 마을. 1940년대. 언덕 위에 탑이 보인다.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 막달라(또는 마그달)는 지명이다. 즉,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를 말한다. 막달라는 히브리어로 믹달(Migdal)이라고 부른다. ‘탑’이라는 뜻이다. 아마 마을 언덕 위에 탑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랍어로는 카리아트 알 마즈달(Qaryat Al Majdal)이라고 부른다. 역시 같은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막달라라는 지명이 두 곳이라는 것이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서로 다른 2개의 막달라라는 지명이 나온다. 물론 그중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약성경에도 나오는 막달라가 분명하다. 갈릴리 호수 서안의 어촌이다. 신약성경에는 지명으로서 막달라라는 명칭이 꼭 한번 나온다. 마태복음 15장 39절이다. 그런데 실은 막달라가 아니라 마가단이라는 지명으로 나온다. 기록된바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이다. 그런데 전후의 상황으로 보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신 곳은 막달라라는 어촌일수가 있다. 그러면 마가단과 막달라는 같은 마을인가?

 

1904년 촬영한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 이 무덤의 입구 앞에서 예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씀하시었다.

                           

성경은 원래 대체로 아람어로 적혀 있었으나 그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오늘날 성경의 원전은 그리스어이다. 성경에도 여러 사본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만한 그리스어 사본에는 분명히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마가단으로 가셨다라고 되어 있다(마태복음 15: 39). 이리저리 생각해 본 결과 마가단이 막달라 임에 틀림없지만 현대 성서학자들은 그리스어 성경에 마가단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마가단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막달라와 마가단이 같은 지명이므로 성경을 새로 출판하게 되면 마가단이라는 생소한 이름보다는 우리 귀에 익은 막달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마가복음에는 같은 케이스인데 완전히 다른 지명이 등장한다. 마가복음 8장 10절에 보면 달마누다(Dalmanutha)라는 지명이 나온다. 즉,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라고 되어 있다. 달마누다는 또 어디란 말인가? 달마누다는 갈릴리 호수가에 있는 마을로서 예수께서 기적으로 4천명을 먹이신 곳이며 막달라라는 마을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그러면 막달라로 가셨다고 하면 될 것이지 왜 달마누다로 가셨다고 했을까? 그런 궁금증은 잠시 뒤로 하고 막달라라는 지명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요단강의 한 지류인 야르무크 강. 유태인들은 과장이 좀 심해서 호수를 바다라고 부르며(갈릴리 호수-갈릴리 바다), 하천을 강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야르무크는 도무지 강이라고 말하기가 미안하지만 그래도 강이라고 부른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탈무드에는 막달라라는 지명이 두 개가 나온다.

- 하나는 야르무크(Yarmouk)강의 동편, 가다라(Gadara)인근에 있는 막달라이다. 일명 막달라 가다라(Magdala Gadara)라고 부른다. 가다라는 고대 도시로서 아랍어로는 움 카이스(Umm Qais)라고 부른다. 야르무크 강은 갈릴리 바다(또는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요단강의 지류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야르무크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시리아와 요르단이 국경을 이루고 있다.

- 또 하나의 막달라는 갈릴리 호반에 있는 마을로서 막달라 누나이야(Magdala Nunayya)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어촌 막달라’라는 뜻이다. 이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아랍어로 알-마즈달(Al-Majdal)이라는 곳이 막달라라고 확신하고 있다. 알-마즈달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인구가 줄어들어 황폐해 졌으나 1910년 이스라엘이 티베리아스의 북서쪽 6km에 현대 도시인 키르베트 메즈델(Khirbet Medjdel), 즉 믹달을 개발함으로서 믹달에 통합된 곳이다.

 

1859년의 베다니. 그림

 

우리가 믹달, 또는 막달라라는 마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성경의 네 복음서에 모두 막달라의 여인 마리아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막달라의 마리아는 예수께서 가장 총애하셨던 제자(따르는 사람) 중의 하나였으며 예수의 부활이라는 기독교 최대의 복음을 가장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하지만 막달라라는 마을이 마리아가 태어난 곳인지, 자란 곳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관련이 있는 곳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단순히 마리아의 고향 막달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아직까지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마리아가 탈무드에 나오는 막달라 누나이야라는 마을 출신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서 내린 마가단이라는 것이다. 유태인 신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는 유태전쟁 때에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타리카에(Tarichae: TarihaEa)라는 마을이 막달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리카에는 갈릴리 호반의 부유한 마을이었다. 사족이지만, 에티오피아에도 막달라라는 마을이 있다. 1868년 영국군에게 함락된 에티오피아의 요새였다.

 

베다니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있는 죄 지은 여인. 막달라 마리아라고 보고 있다. 한쪽에는 마르다가 서 있다. 러시아 이콘

                            

베다니(Bethany)는 어디인가? 베다니는 아람어로 베트 아냐(Beth anya)라고 한다.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집이 있는 마을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나병에 걸린 시몬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이후 베다니에 와서 묵었다. 부활한후 제자들과 지내다가 작별하고 승천한 곳도 베다니라고 한다. 베다니는 아랍어로 알-에이자리야(Al-Eizariya)라고 하며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다. 베다니의 동남쪽에는 감람산(올리브산)의 자락이 이어져 있다. 알-에이자리야라는 말은 아랍어로 ‘나사로의 집’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 마을에는 2천년 이상된 오래된 집이 있다. 순례자들은 이 집에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가 살던 집이라고 믿어서 발길을 향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베다니가 아나냐(Ananiah)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한 명칭으로 구약성경 느헤미아(11장 32절)에 나오는 아나냐, 즉 베델(Bethel)이 베다니라고 주장했다. 베델과 베다니가 발음도 비슷하니 그럴듯한 주장이라고 할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베다니가 베트파게(Bethphage)에서 나온 말로서 ‘익지않은 무화과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아람어로 베이트 히니(Beit hini)는 ‘무화과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베이트 히니가 베다니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The Holy Land(성지: 1866)라는 책의 저자인 윌렴 딕슨(William Dixon)과 같은 저명한 학자는 베다니가 무화과 또는 대추야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더구나 탈무드의 어느 곳을 보더라도 그런 뜻이 나타나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딕슨은 오히려 베다니가 시리아어로서 ‘가난한 집’ ‘가난한 자의 집’ ‘구두쇠의 집’이라는 뜻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람어의 베트 아냐(Beth anya)에서 비롯했다고 내세웠다.

 

호세 드 리베라의 막달라 마리아의 승천. 한 천사는 죄에사 자유로워졌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들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베다니라고 생각되는 장소가 네 번 등장한다.

 

1. 누가복음 10: 38-42에는 예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된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이다. 여기에는 그저 '한 마을'이라고 되어 있으나 다른 복음서에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살고 있는 마을이 베다니라고 되어 있으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이 베다니에 들어 가신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2. 요한복음 11: 1-46에는 나사로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야기가 나온다.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로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 구절로 보아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른 사건이 먼저 일어났고 그 후에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수 있다. 또한 베다니의 시몬이라는 바리새인 겸 나병환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죄 지은 여인이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고 되어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같은 내용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베다니 마을에 가면 나사로의 무덤이 있어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3. 마태복음 26: 6-13, 마가복음 14: 3-9, 요한복음 12: 1-9에는 예수께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마리아가 와서 예수의 머리(어떤 기록에는 발)에 향유를 바른 일이 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고,

마가복음에도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복음에는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4. 누가복음 24: 50-53에는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승천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왜 베다니에서 승천하셨을까? 고향인 나사렛이 아니고? 더구나 예수께서는 부활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았던가?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의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막달라라는 마을과 베다니라는 마을은 같은 곳이어야 앞뒤가 맞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동편에 있는 어촌이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데에 있는 마을이다. 서로 완전히 다른 마을이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에서 막달라는 마리아가 태어난 곳이며 그후 베다니로 이사와서 살았다면 얘기는 된다. 다음으로 죄 지은 여인의 주소지에 대한 사항이다. 죄 지은 여인은 막달라와 같은 어촌에 살면서 영업을 했을리가 없다. 예루살렘 부근인 베다니에 살면서 영업을 했다면 얘기는 된다.

 

그건 그렇고 베다니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또 한군데 더 나온다. 요한복음 1장 28절이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라는 구절로서 세례 요한이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푼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영역본에는 베다니가 아니라 베타바라(Bethabara)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성경들은 베타바라를 베다니로 번역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무덤. 안내판에 St Lararus Tomb이라고 적혀 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자 아무것도 없다. 나사로는 죽은 후에 이 무덤에 4일 동안 있다가 예수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그 후에 유태인들의 박해를 받아 막달라 마리아 등과 함께 배에 실려 추방당했으나 하나님의 인도로 프랑스 마르세이유 지방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다.

                         

누가복음 8장에도 간단하나마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8장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이다. 우선 막달라라는 성읍은 갈릴리 호반에 있는 4대 성읍 중의 하나로서 항구이다. 그러므로 상업이 발달하였다. 로마 시대에는 로마에게 점령당하여 로마군인들이 주둔해 있었다. 말하자면 외국군 점령지였다. 그런 곳에 살고 있던 여인이 어떤 여인인지는 잘 알수 있는 노릇이다. 일곱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귀신을 말한다. 여러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막달라의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치유를 받아 그 후로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였다. 그런 그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자 일곱귀신이 다시 자기를 괴롭힐 것으로 생각하여 고통 중에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크게 애통하였다는 얘기다.


 베다니의 나사로 기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