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 - 2

정준극 2009. 9. 24. 15:12

막달라(Magdala) 마리아와 베다니(Bethany)의 마리아 - 2

 

베다니의 마리아는 신약성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나온다. 요한복음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는 그후 예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신 때이다. 누가복음 10: 38-42에 기록된 대로이다. 마르다는 예수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한데 마리아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들었다는 대목이다. 세 번째는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식사할 때인데 그 장소가 바로 베다니로 되어 있다. 베다니의 시몬은 바리새인으로 나병환자이다. 이때 어떤 죄 지은 여자가 값비싼 향유를 들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엇다는 에피소드가 누가복음 7: 36-50에 기록되어 있다. 그 여자의 이름이 마리아였다는 것이다. 다만, 시몬의 집에 향유를 들고 간 여자가 마리아라고 정확히 설명한 구절은 없어서 곤혹스럽기는 하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 마태복음 26: 7에는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되어 있으며 마가복음 14: 3에도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여자가 이름없는 '한 여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이며 그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동생이라고 믿고 있다.

 

20세기 초에 촬영한 베다니 마을. 비옥한 땅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예루살렘과 가까우며 감람산의 끝 자락에 있다.

 

1910년에 발간된 가톨릭백과사전에 의하면 그리스교회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와 누가복음 7: 36, 그리고 7: 50에 등장하는 ‘죄를 지은 여자’와는 다르다고 설명되어 있다. 누가복음 7: 36 이후에는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7: 50에는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죄를 지은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 다른 여자라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죄 지은 여자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개신교는 심지어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을 처음 전한 막달라 마리아,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그리고 죄를 지은 여자가 서로 각각 다르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로마가톨릭에서는 오래 동안 세 여자가 실은 한 사람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즉, 나중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가까이에 있었으며 예수께서 죽으시자 시체를 장사지내는데 함께 하였고 특히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예수를 장사지낸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 그리고 예수께서 베다니의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에 향유를 가져와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이 실은 같은 여인이라는 것이다.

 

눈물로서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티티안 작품. 무슨 책인지는 모르지만 그 아래에 있는 해골은 죄악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누가복음에 기록된 것만 보고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 그리고 죄를 지은 여인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때에 요한복음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죄를 지은 여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했다. 즉, 요한복음 11: 1-2을 보면 '예수께 향유를 바른 여인이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라고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기록된바,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은 ‘죄를 지은 여자’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인이라고 보았다. 로마가톨릭은 그 근거로서 마태복음 26: 6 -12의 말씀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무어라고 적혀 있는가 하면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예수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를 준비한 사람이 누구인가? 막달라 마리아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후 첫 날 새벽에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무덤에 갔었다.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의 마리아임은 타당한 주장이 아닐수 없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로마가톨릭은 요한의 경우, 그의 복음서(요한복음 19: 25, 20: 1, 20: 18)에서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을 분명히 기록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냥 마리아라고만 불렀기 때문에 요한도 그런 경우에는 예수께서 습관적으로 부르시는 대로 그냥 마리아라고만 적었다는 것이다. 즉, 요한복음 20: 11에는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더니...”라고 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마리아라고만 적었고 20: 16에도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어로 랍오니 하니”라고 하여 마리아라고만 적었다.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 살짝 미소를 띠었음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가깝게 지내셨기 때문에 그냥 관습적으로 마리아라고만 불렀다는 것만 가지고서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 그리고 죄를 지은 여자가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는 고려해 볼만한 사항이라고 내세웠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께서 베다니의 바리새인으로 나병환자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에 죄를 지은 여자가 식사 장소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있는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참회의 눈물을 흘려 예수의 발이 눈물로서 젖게 되자 자기의 머리칼로 젖은 발을 닦았으며 이어 값비싼 향유를 머리에 부었다고 되어있다. 만일 이 여자가 오래전부터 예수와 잘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식사 장소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서 식사하고 있는 예수의 발에 입 맞추고 머리에 향유를 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생판 모르는 여자일 것 같으면 함께 있는 제자들, 그렇지 않으면 깐깐하기로 소문난 바리새인인 시몬의 제지를 받아 예수의 근처에 까지 올수도 없었을 것이다. 베다니에서 예수와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여자라면 누구인가? 더구나 죄를 지어 참회하는 여자라면 범위가 더 좁아 진다. 나사로의 동생인 베다니의 마리아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요한복음 11: 3에 의거하여 베다니의 마리아는 바로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던 자며 예수의 장례를 준비한 막달라 마리아라고 볼수 있다.

 

안젤로 브론치노의 '죽임 당하신 예수와 애통하는 여인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 검은 옷은 성모.

 

사족이지만, 동방정교회와 동방의 가톨릭교회들은 베다니의 마리아(나사로와 마르다의 동생)를 성인으로 추앙하여 6월 4일을 축일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몰약을 든 사람들’을 기념하는 주일, 즉 부활절로부터 세 번째 주일에도 성베다니의 마리아를 위한 주일로 지키고 있다. 또한 종려주일의 하루 전날인 ‘나사로토요일’에도 성베다니의 마리아를 기념하고 있다. 루터교, 영국성공회,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7월 29일을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오늘날의 베다니 마을. 나사로의 무덤이 있다고 추정되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