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화가와 조각가

뤼란트 프뤼아우프(Rueland Frueauf)

정준극 2009. 10. 3. 20:22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뤼란트 프뤼아우프(Rueland Frueauf)

 

수태고지

 

뤼란트 프뤼아우프(1440/45-1507)는 잘츠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인물화가였다. 뤼란트의 아버지도 같은 이름으로 화가였다. 오스트리아의 초상화는 일찍이 루돌프 4세의 초상화로부터 시작하여 훌륭한 전통을 이어왔다. 프뤼아우프는 이러한 전통의 시작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다만, 전통적인 초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프뤼아우프는 궁정 초상화 대신에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다는 것이다. 15세기와 16세기에는 중산층의 증가가 두드러졌던 시기였다. 이들 중산층들도 과거 귀족계급의 사람들처럼 초상화를 갖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므로 일반사람들에 대한 초상화가 성행할수 있었다. 프뤼아우프의 스타일은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초상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표면적인 모습보다는 내면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이 그의 작품들을 빛나게 만든 요소였다. 그는 RF라는 이니셜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성레오폴드 교회의 제단화인 성요한은 1494년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의 ‘성안나, 성모, 아기 예수’는 1508년의 작품이다. 1496년에 제작한 ‘십자가의 고난’은 배경에 파싸우(Passau)의 성니콜라우스교회가 그려져 있어서 그의 초기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뤼란트 프뤼아우프는 1497년 결혼을 통하여 파싸우의 시민권을 획득한바 있다. 독일 뉘렘베르크의 성비투스(St Vitus)교회 제단화도 그가 제작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가시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