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씨씨의 남다른 생활

정준극 2009. 10. 5. 14:02

씨씨의 남다른 생활

 

씨씨의 몸매는 한마디로 가냘픈 형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아서 160 cm 정도이다. 허리는 유난히 가늘다. 20인치라고 한다. 씨씨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호프부르크에 있는 씨씨의 거실을 보면 기계체조기구가 있다. 이를 통하여 몸매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씨씨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다이어트를 했다. 주로 송아지고기를 주스처럼 짜서 그 물을 끊여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었다고 한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씨씨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송아지 생고기를 저며서 얼굴에 마스크처럼 썼다고 하며 올리브 오일로 목욕을 했고 딸기로 얼굴 팩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그럴수는 있다는 것이다. 씨씨는 승마에 탁월하였다. 원래 어린 시절 바바리아에서 살고 있을 때부터 말타기를 좋아했다.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는 스페인승마학교에서는 씨씨를 위한 특별한 말들을 관리하고 있을 정도였다. 씨씨는 화초 가꾸기에도 남다를 취미가 있었다. 또한 시를 좋아하여 직접 시를 쓰기도 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가장 좋아했다. 씨씨가 남긴 시로는 '북해의 노래'(Nordseelieder)와 '겨울노래'(Winterlieder) 등이 있다. 씨씨는 시를 통하여 자기 자신만의 환상적인 세계를 꾸몄다. 씨씨는 자신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티타니아(Titania)로 비교해 생각했다. 씨씨는 그리스 문학에 대하여 심취하였다. 호머의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는 늘 가지고 다니며 읽는 책이었다. 기왕 말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씨씨에게는 여러명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조지 베이 미들턴(George Bay Middleton)이란 사람이었다. 유명한 승마인으로 아마도 씨씨와 승마 때문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윈스턴 처칠경의 부인이 된 클레멘틴 호지어(Clementine Hozier)는 조지 베이 미들턴의 딸이라고 한다. 아무튼 씨씨와 미들턴이 조금 지나치게 말해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확실치는 않다. 씨씨를 추종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인물은 헝가리 귀족들의 지도자라고 할수 있는 율리우스 안드라씨(Julius Andrassy) 백작이다. 그는 평생 동안 씨씨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씨씨를 흠모하면서 지냈다.그건 그렇고, 일설에 의하면 씨씨의 친정집인 비텔스바흐(Wittelsback) 가문에서는 정신 질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씨씨도 그 영향을 받아 정신적으로 불안하였다는 얘기가 있다. 비텔스바흐 가문과 연관되는 사람으로서 유명한 인물은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였다. 바그너의 숭배자이며 바그너 후원자였던 루드비히 2세는 어느날 자녁에 느닷없이 호수로 걸어들어가서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실에서의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승마를 즐겨한 씨씨의 승마복 초상화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또 한마디 더 하자면 집을 떠나 오랜 기간 여행을 다닌 씨씨는 남편 프란츠 요셉 황제와 비엔나의 유명한 여배우 카타리나 슈라트(Katharina Schratt: 1853-1940)의 데이트를 묵인 내지 은근히 후원까지 했다고 한다. 씨씨는 자기가 너무 자주 출타를 하는 바람에 비엔나에서 남편 프란츠 요셉을 이것저것 제대로 살펴 주지 못하므로 심히 미안하다고 생각하여 남편이 다른 여인과 데이트하는 것을 묵인 내지 지원했다는 것이다. 프란츠 요셉 황제가 카타리나 슈라트를 처음 만난 것은 1885년 비엔나에서 열린 만국산업박람회에서였다. 이 기간중 연극 공연이 있었는데 프란츠 요셉 황제가 카타리나의 연극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며칠후 프란츠 요셉 황제는 카타리나를 초청하여 러시아 황제(짜르) 알렉산더3세를 위해 별도의 연극 공연을 부탁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친교는 1916년 프란츠 요셉 황제가 서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카타리나를 프란츠 요셉 황제의 정부라고 불렀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카타리나 슈라트에게 쇤브룬 궁전 부근의 글로리에타가쎄(Gloriettagasse)에 좋은 집을 선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슈타츠오퍼 건너편의 캐른트너 링에 있는 3층 건물을 마련해 주었다. 카타리나 슈라트는 프란츠 요셉의 사후 글로리에타가쎄의 저택은 반납하고 캐른트너 링의 아파트에서 여생을 보냈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정부였던 카타리나 슈라트

 

씨씨의 등록 상표는 유난히 긴 머리와 부채이다. 부채는 항상 지니고 다녔다. 자기의 얼굴을 가릴수 있어서 필요했다는 얘기였다. 보기 싫은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심정에서 였다고 한다. 씨씨의 머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길다. 아름다운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왜 그렇게 긴 머리칼을 유지하였는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백작부인들의 시종을 받아야 했던 씨씨는 그것이 귀찮았다. 머리를 가다듬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간섭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가다듬는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에 씨씨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시를 쓰기도 했다. 씨씨는 하이네의 시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의 일기책에 하이네 스타일의 시를 써서 남기기도 했다. 씨씨는 하이네의 시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시절 5월'(Im wunderschonen Monat Mai)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시절 5월, 나무마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맺힐 때에, 나의 마음 그곳에 머물러 사랑이 꽃송이처럼 맺히기 시작하였네...’ 그런 시였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긴머리의 씨씨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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