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시작하면서

상트 샤플르의 성스러운 유물

정준극 2009. 11. 4. 07:08

상트 샤플르의 성물

Relics of Sainte-Chapelle

 

상트 샤를르 성당이 있는 파리의 시테(중심지역).

 

파리 중심지인 시테(Ill de la Cite)에 있는 상트 샤플르(Sainte Chapelle: Holy Chapel)는 중세 이후 역대 프랑스 국왕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온 성당이다. 한때 이곳에 프랑스가 자랑스럽게 확보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물 여러 점이 간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국가인 프랑스에서 이만한 성물을 간직하고 있던 성당은 상트 샤플르가 제일이었다. 상트 샤플르에 보관되었던 가장 뜻 깊은 성물은 예수의 머리에 씌웠던 가시면류관이었다. 성십자가의 조각과 예수의 무덤을 막아 놓았던 바위의 조각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돈을 주고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가지 않을 이런 물건들이 가톨릭교회에서는 고귀한 성물로서 숭배를 받고 있다. 상트 샤플르에 있던 성물들은 프랑스에서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자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물실로 옮겼다. 아무리 폭도들이라고 해도 노트르담은 성역이기 때문에 침범할수 없었다. 상트 샤플르 성당은 노트르 담 대성당의 인근에 있다.

 

상트 샤플르 교회 현관. 중앙 타워의 장미창이 웅장하다. 

 

상트 샤플르가 프랑스왕국의 보물 창고로 사용된 것은 순전히 중세의 루이(성루이)왕 때문이었다. 루이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비잔틴 제국의 볼드윈2세로부터 가시면류관(Holy Crown: Crown of Thorns)과 성십자가의 조각 등을 사왔다. 성물을 사고팔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중세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럴듯한 물건들을 확보하여 일반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비잔틴으로부터 귀중한 성물을 가져온 루이국왕은 이들을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 보관키로 했다. 이후 루이왕은 계속 성물들을 추가로 확보하여 상트 샤플르 대성당으로 가져왔다. 그런 공로로 인하여 나중에 바티칸은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성인이 되기도 어렵다.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는 가시면류관과 성십자가의 조각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가 입었었다는 옷 등 유품 몇점,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성창의 복제품, 십자가상의 예수에게 주기 위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스폰지), 예수의 얼굴 모습이 찍혀 있는 천(Mandylion) 등이 있었다. 모두 진위는 알수 없다. 그저 그런가보다라고 할 뿐이다.

 

상트 샤플르 성당의 회랑과 천정. 대단하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중세의 군주들은 막대한 군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을 챙겨서 파는 것이 유행이었다. 왕실과 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금은보석들이 우선적으로 세일 대상이었다. 교회의 보물들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앙리4세(Henri IV) 때에는 교회의 보물들이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 있는 것과 같은 일종의 쓰레기(실은 값으로 칠수 없는 귀중품)들은 별로 사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교회들이 기를 쓰고 그런 성물들을 팔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혁명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혁명은 왕족들이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사들인 모든 물건들을 싫어하였다. 국민들은 왕들이 사서 모았던 성물들까지도 혁명의 적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다만, 예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극히 귀중한 물건들만은 보존토록 했다.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 있던 성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물실로 옮겨진 것은 그러한 조치 때문이었다. 이후 매년 성금요일에는 일부 성물들을 공개전시하여 왔다. 2001년에는 루브르에서 상트 샤플르 보물전시회(Le tresor de la Saint-Chapelle)가 개최되었다.

 

프랑스에 성물을 많이 가져온 루이9세 기념상 

 

예수님이 썼던 가시면류관을 담은 성물함. 현재는 노트르담 사원의 보물실에 있다.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냈던 무덤의 바위 조각을 간직한 상자의 뚜껑. 역시 현재는 노트르담 사원의 보물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