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홀로코스트

희생자 2천만명

정준극 2009. 11. 16. 05:42

[희생자 통계]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희생자, 즉 사망자의 숫자가 달라질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는 유태인 희생자만을 말한다. 유럽에는 7백30만명의 유태인이 있었으며 그중 78%인 6백만명 정도가 죽임을 당했다. 넓은 의미에서는 22만-50만의 집시, 20만명의 신체불구자 및 정신질환자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범과 종교적 저항자, 그리고 2-3백만명에 이르는 소련군 포로, 5천-1만5천명의 동성연애자를 합하면 토털 희생자는 9백만명에 이른다. 만일 여기에 폴란드 소수민족 1백80만 내지 2백만명을 포함한다면 전체 희생자수는 1천1백만명에 이르게 된다. 더 넒은 의미에서의 홀로코스트는 소련 민간인 6백만명을 포함한다면 전체 희생자는 1천7백만명에 이른다. 그리고 나치가 점령한 영토에서 알게 모르게 죽어나간 사람과 전쟁터에서 전사한 군인까지 합하면 모두 2천1백만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 된다. 실제로 나치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어린 아이들까지 손에 총을 쥐어서 전쟁터로 내보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이를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희생자

유태인

5백90만명

소련 전쟁포로

2-3백만명

폴란드 소수민족

1.8-2백만명

집시(로마니)

22만-150만명

불구자, 정신병자

20만-25만

동성연애자

5천-1만5천

여호와의 증인

2천5백-5천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 시신들을 보고 경악하는 미군들

 

유태인이 얼마나 희생되었느냐에 대하여는 전쟁이 끝난후에 일반적으로 6백만명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협회인 야드 바셈(Yad Veshem)은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6백만명이라고 하는 것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유태인 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남미에서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야드 바셈은 전쟁 전과 전쟁 후의 유태인 인구를 비교하여 희생자 수를 유추했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 서류와 가스실 서류를 검토하여 희생자 수를 추산했지만 역시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야드 바셈의 중앙데이타베이스에는 현재 3백만명의 명단이 올라와 있다. 모두 온라인으로 접속할수 있다. 라울 힐버그(Raul Hilberg)는 5백10만명이라고 주장했으며 야콥 레쉰스키(Jakob Leschinsky)는 5백85만명이라고 내세웠다. 홀로코스트백과사전에는 5백59만에서 5백86만 사이라고 적혀있다. 베를린기술대학교의 볼프강 벤츠(Wolfgang Benz)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5백29만에서 6백20만 사이라고 되어 있다. 이제 유태인을 비롯하여 다른 희생자들의 현황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걸어들어가는 유태인들. 샤워하러 가는줄 알았다.

 

하지만 또 다른 홀로코스트도 있다. 일본에 의한 아시아에서의 홀로코스트이다. 일제는 조선과 만주와 중국, 필리핀, 베트남, 타이완, 버마(미얀마) 등지에서 실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구실을 붙여서, 또는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체포하여 살해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역사는 유럽에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홀로코스트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일본의 홀로코스트는 누가 기억할 것인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있는 3.1운동 당시 일제에 의한 제암리 학살 사건의 현장.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일제는 무고한 주민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여 문을 못으로 닫고 불을 질러 학살하였다. 이것이 홀로코스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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