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캐서린의 집안 내력

정준극 2009. 12. 16. 11:35

[캐서린의 가계]

 

캐서린(조피)가 태어난 폴란드(당시 프러시아)의 츠체친

 

캐서린의 아버지인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Christian August)는 안할트(Anhalt) 왕가에 속한 인물이었다. 왕족이기 때문에 프린스(왕자)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사족이지만 현재의 독일에는 중세로부터 수많은 소왕국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왕족들이 많았다. 아우구스트는 안할트 왕가의 사람이지만 뜻한바 있어서 당시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프러시아 왕국에 종사했다. 아우구스트는 슈테틴의 총독이라는 지위로서 프러시아군의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다시 캐서린으로 돌아가서, 캐서린의 풀 네임은 소피아 아우구스타 프레데리카(Sophia Augusta Frederica)였다. 독일식으로 기술하자면 조피 프리드리케 아우구스테 폰 안할트-체르브스트-도른부르크(Sophie Friedrike Auguste von Anhalt-Zerbst-Dornburg)였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공식적인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피그헨(Figchen)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특별한 뜻이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캐서린(카테리나)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의 페터와 결혼하고 나서 러시아식으로 개명한 것이다. 실제로 조피의 러시아식 이름은 예카테리나(또는 카테리나)였다. 캐서린은 영어식 표현이다. 한편, 캐서린은 먼 조상이 러시아 계통이어서 그것으로 러시아와의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캐서린은 스웨덴과도 관계가 있었다. 사촌 두명이 스웨덴 국왕이었다. 구스타브 3세와 샤를르 13세였다. 캐서린은 프랑스인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대부분 왕족들은 프랑스식 교육을 받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캐서린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조피(나중에 캐서린)와 결혼한 러시아의 페터(나중에 페터 3세)는 조피(캐서린)와 5촌간이었다. 우리는 5촌이라고 부르지만 유럽에서는 세컨드 커즌, 즉 제2의 사촌이라고 부른다. 조피(캐서린)와 페터의 결혼은 프랑스, 러시아, 프러시아가 외교적으로 필요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이 결혼에 관련했던 인물은 프랑의 르토크(Lestocq)백작, 러시아에서는 페터의 숙모인 엘리자베트 왕비, 프러시아 측에서는 프레데릭 2세였다. 프랑스의 르토크와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2세는 프러시아와 러시아의 유대를 강화하여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러시아에서도 짜르에 버금하는 권력을 흔들고 있는 베스투체프(Bestuzhev) 수상을 몰아내려는 깊은 의도에서 프러시아의 조피와 러시아의 페터의 결혼을 추진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 수상 베스투체프는 오스트리아와 비밀리에 협력하는 빨치산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되느라고 러시아의 엘리자베트 왕비는 베스투체프 수상을 대단히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르토크 백작과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2세가 베스투체프를 추방하기 위해 조피와 페터의 결혼을 추진코자 하고 있다는 낌새를 차리자 돌연 반대로 돌아섰다.

 

캐서린의 어머니 요한나 엘리자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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