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캐서린의 결혼

정준극 2009. 12. 16. 11:36

캐서린의 결혼

 

조피의 어머니인 요한나(Johanna)도 처음에는 딸 조피가 러시아 짜르가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페터와 결혼하는 것을 적극 환영하였으나 한 성깔 하는 여자라서 러시아 왕비인 엘리자베트가 이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서자 ‘누군 뭐 좋아서 이러나’라면서 자기도 딸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실상 요한나는 허영심과 야심이 많은 여자였다. 요한나는 자기 딸이 나중에 러시아의 왕비가 되면 프러시아의 귀족 부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엘리자베트를 비롯한 콧대를 높이던 여자들이 자기를 하늘처럼 떠받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요한나는 감정이 차가우며 남들을 비난하거나 학대하기를 좋아하고 귀족부인들과 가십을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고 한다. 요한나는 원래부터 러시아 왕비인 엘리자베트를 싫어했다. 그걸 참으면서 자기의 딸을 러시아 왕실로 시집을 보내려는데 잘 나가던 밥에 재를 뿌린다는 식으로 느닷없이 엘리자베트 왕비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에 분통이 터졌다.

 

결혼 전의 조피(캐서린)

 

따지고 보면 엘리자베트 왕비는 조피의 가족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현재의 남편인 짜르와 결혼하기 전에 실은 요한나의 남동생인 샤를르 아우구스투스(Charles Augustus)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신랑될 사람이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엘리자베트는 러시아 황제가 될 페터 2세와 결혼하였다. 그러한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이여서 엘리자베트가 딸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서자 요한나는 엘리자베트를 당연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엘리자베트가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국왕을 모함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엘리자베트의 프러시아 방문을 금지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조피는 페터를 좋아하여 그와의 결혼을 주장했다. 페터도 조피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피의 아버지인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투스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조피의 아버지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다. 딸 조피가 페터와의 결혼을 위해 루터교 신앙을 버리고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한다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결혼은 별별 난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추진되었다. 러시아정교회는 1744년 6월 28일 조피 공주를 새로운 이름인 예카테리나(캐서린: 에카테리나)와 함께 러시아정교회의 멤버로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관례에 따라 남편 페터의 아버지인 알렉세이의 이름을 따서 알렉세예브나(Alexeyevna)라는 가족이름을 주었다. ‘알렉세이의 딸’이라는 뜻이었다. 조피와 페터의 약혼은 조피가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한 이튿날에 공식 발표되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듬해인 1745년 8월 21일 생페터스부르크에서 거행되었다. 조피가 16세가 되던 해였다. 조피의 결혼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끝내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페터는 결혼 전인 1739년에 홀슈타인-고토르프(Holstein-Gottorp)공작이 되어 페터 폰 홀슈타인-고토르프라는 새로운 호칭을 갖고 있었다. 홀슈타인-고토르프는 오늘날 독일과 덴마크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러시아의 영토였다. 결혼후 두 사람은 홀슈타인-고토르프에 있는 오라니엔바움(Oranienbaum)성에 거처를 정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몇 년을 지냈다.

 

캐서린과 결혼한 페터

 

캐서린(조피)은 시어머니가 될 엘리자베트가 자기를 상당히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약혼후 곧바로 생페터스부르크의 궁전으로 들어와서 지내며 결혼을 준비했다. 캐서린은 시어머니가 될 엘리자베트, 남편이 될 페터, 그리고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우선 러시아어를 빨리 익혀야했다. 캐서린은 날마다 배운 러시아어를 익히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복습했다. 캐서린은 추운 새벽까지 정신없이 공부하는 바람에 결국 결혼을 앞두고 폐렴에 걸려 하마터면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요단강을 건널 뻔 했다. 캐서린은 1년도 안되어 러시아어를 마스터했다. 물론 독일어 악센트를 버리지는 못했다. 캐서린은 자기의 비망록에 러시아의 왕관을 쓰기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감수하겠다고 썼다. 16세 여자로서는 대단한 야심이었다. 실제로 캐서린(조피)는 이미 15세 때에 주변 사람들을 자기의 수중으로 완전히 장악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캐서린이 생활했던 생페터스부르크의 겨울 궁전(그림)

'왕실 이야기 > 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토확장을 위한 외교정책  (0) 2009.12.16
쿠테타로 집권  (0) 2009.12.16
캐서린의 복잡한 사생활  (0) 2009.12.16
캐서린의 집안 내력  (0) 2009.12.16
러시아의 세미라미스  (0) 200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