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
에르미따쥬박물관의 루벤스 전시실
케서린은 러시아 역사상 문화와 예술을 가장 발전시키고 후원하였던 군주였다. 캐서리은 예술, 문학, 교육의 후원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생페터스부르크 겨울궁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 미술관인 에르미따쥬(Hermitage)박물관은 캐서린의 개인 소장품으로부터 비롯하였다. 한편, 캐서린은 충복인 이반 베츠코이(Ivan Betskoi)의 주장을 받아들여 러시아의 교육제도를 개선하는 일에도 열심을 보였다. 귀족 집안의 젊은 여자들을 교육시키는 스몰니교육원(Smolny Institute)은 캐서린이 일찍이 1764년에 개설한 학교였다. 캐서린 자신도 문학인이었다. 극본을 썼고 소설도 썼으며 비망록도 썼다. 캐서린은 프랑스 볼테르, 디데로(Diderot), 달람베르(d'Alembert)등 당대의 박학다식한 인물들과 교분을 쌓았다. 이들이 캐서린의 작품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음을 보면 문학가로서 캐서린의 재능을 알아 볼수 있다. 캐서린은 경제문제에 대하여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캐서린은 1765년에 생페터스부르크에 자유경제협회(Free Economic Society)를 설립하고 당대의 경제학자들을 멤버로 영입하여 이들로부터 러시아경제발전을 위한 자문을 받았다. 자유경제협회에는 아서 영(Arthur Young), 자크 네커(Jacques Necker)등 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외국회원으로 있었다. 그런가하면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페터 폴라스(Peter Pollas)와 같은 저명과학자들을 베를린으로부터 생페터스부르크로 빼 돌리기까지 했다.
캐서린 여제가 설립한 스몰니교육원. 러시아 여성교육의 효시였다. 앞에 있는 기념상은 나중에 세운 레닌.
캐서린은 볼테르를 크게 존경했다. 여제가 된후부터 1778년 볼테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15년 동안이나 서한을 교환하며 지냈다. 캐서린과 볼테르는 생전에 한번도 만난 일이 없다. 하지만 캐서린은 볼테르가 세상을 떠나자 매우 애석해 했으며 볼테르의 유족으로부터 볼테르의 소장서적을 거의 모두 구입하여 러시아국립도서관의 장서로 간직하게 했다. 캐서린은 프랑스의 디데로도 매우 존경했다. 캐서린은 1762년 여제로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프랑스 당국이 디데로가 주관하여 발간하려는 백과사전을 프랑스당국이 가톨릭 교리에 위배되는 사항이 많다는 이유로 발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자 디데로에게 직접 연락하여 러시아가 대신 발간하겠다고 제안한 일도 있다.
캐서린 여제가 가장 존경했던 볼테르[볼테르는 필명이며 원래 이름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1694-1778)이다.]
캐서린은 여제로 즉위한지 4년후인 1766년 프랑스에서 비롯한 계몽사상을 러시아에서도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대위원회(Grand Commission)를 설치했다. 오늘날로 보면 상원과 흡사한 역할의 기구였다. 학자, 귀족, 시민대표, 농민대표 등 각계각층의 대표 65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러시아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포함하는 위원회였다. 위원회는 2백회 이상의 회의를 가지며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각분야에 대한 민주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캐서린은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왕정을 위협할수도 있는 지나치게 급격한 민주화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캐서린을 뒤에서 후원해온 귀족들은 이를 경계하였다. 결국 위원회는 해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진전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이나마 민주화를 위한 조치들이 채택되었다. 예를 들면 지방자치법령, 국가교육헌장, 소금무역 및 상업항해 법령 등이었다.
캐서린의 러시아계몽사상은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었다. 가브리엘라 데르차빈(Gavriela Derzhavin), 데니스 폰비친(Denis Fonvizin), 이폴리트 보그다노비치(Ippolit Bogdanovich)등은 19세기 러시아문학의 기틀을 마련해 준 계몽주의 사상가였다. 알렉산더 푸쉬킨(Alexander Pushkin)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러시아 최고 시인 알렉산더 푸쉬킨(1799-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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