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폴란드 분할의 주역

정준극 2009. 12. 16. 11:41

[폴란드의 분할]

 

1764년 캐서린은 옛 애인이었던 스타니슬라브 포니아토브스키(Stanislaw Poniatowski)를 폴란드 국왕의 자리에 앉혔다. 폴란드를 분할하자는 아이디어는 프러시아 국왕인 프레데릭대제로부터 나왔지만 실제로 주도한 것은 캐서린이었다. 1768년 캐서린은 정식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섭정(Protectress)이 되었다. 폴란드의 반러시아 세력들은 캐서린을 반대하여 이른바 ‘바르연방’(Confederation of Bar: 1768-1772)을 구성하고 러시아에 항거하였다. 캐서린은 반러시아 봉기를 무차별하게 분쇄하였다. 그리고 폴란드에 제정러시아의 허수아비 정부를 수립하고 러시아 대사와 사절단으로 상임위원회를 구성하여 폴란드를 장악하였다.

 

폴란드 귀족들이 포돌리아의 바르(Bar)에서 회합하여 러시아와 러시아가 세운 포니아토브스키 왕에 항거하기 위한 봉기를 하였다. 그림은 러시아와의 1771년 랑코르나 전투에 앞서 바르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폴란드 봉기군

 

 

그로부터 얼마 후인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서 왕권을 타도하고 공화제가 도입되었다. 계몽주의에 대하여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던 캐서린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그가 러시아에서 추진하려던 여러 가지 계몽주의 정책을 중지하였다. 그러하던 차에 폴란드는 국수 지도층의 끈질긴 요구에 의해 1791년 ‘5월 헌법’(May Constitution)를 채택하였다. 캐서린은 폴란드가 새로운 헌법을 등에 업고 과거의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부활을 획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캐서린은 만일 연방 내에서 민주운동이 가시화되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군주제도가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캐서린은 폴란드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캐서린은 폴란드 내에서 혁명을 거부하는 세력인 타르고비차연맹(Targowica Confederation)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폴란드에서는 애국세력이 폴란드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캐서린의 러시아에 반기를 들었다. 이른바 ‘폴란드전쟁’(1792)이었다. 캐서린은 이들의 봉기를 철저하게 분쇄하였다. 2년후인 1794년에는 폴란드의 코스치우츠코(Kosciuszko)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캐서린은 이것도 제압하였다. 캐서린을 폴란드를 어서 속히 분할하여 더 이상 골치꺼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캐서린은 1795년 폴란드의 모든 지역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나누어 가졌다. 그로 인하여 폴란드 사람들은 아직도 러시아와 캐서린을 원수로 여기고 있다.

 

캐서린은 옛 애인이었던 스타니슬라브 포니아토브스키 폴란드왕 

'왕실 이야기 > 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과 문화의 치적  (0) 2009.12.16
일본과의 관계  (0) 2009.12.16
계몽군주로서의 캐서린  (0) 2009.12.16
영토확장을 위한 외교정책  (0) 2009.12.16
쿠테타로 집권  (0) 200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