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포니아토브스키 사건

정준극 2009. 12. 16. 11:45

[포니아토브스키 사건]

 

포니아토브스키.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다. 덧 없는 인생?

 

포니아토브스키(Poniatowski)는 캐서린이 사랑했던 폴란드의 젊은 귀족으로 명문 차르토리스키(Czartoryski)가문의 출신이었다. 포니아토브스키는 캐서린보다 26세 연하였다. 캐서린이 포니아토브스키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페터와 결혼한지 이미 10년이 지난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공연한 연인으로 지냈다. 캐서린은 포니아토브스키와의 사이에 안나 페트로브나(Anna Petrovna)라는 딸 하나를 두기까지 했다. 1757년 12월에 태어났다. 캐서린이 포니아토브스키를 만난 것은 러시아주재의 영국대사인 챨스 핸베리 윌리엄스경(Sir Charles Hanbury Williams)이 소개해 주어서였다. 약삭빠른 영국대사는 폴란드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로부터 많은 것을 양보받기 위해 캐서린에게 당시 22세의 영계인 친러시아 성분의 남친을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포니아도브스키는 7년 전쟁에서 영국군에 입대하여 전투에 참가헸었다.

 

* 안나 페트로브나는 페터 대제의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두 안나 페트로브나를 혼돈하지 않도록! 페터 대제의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는 자기가 제정러시아 황실의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캐서린에 도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페터 대제의 둘째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 첫째 딸인 엘리자베트는 페터 대제가 세상을 떠나자 여제로서 제정러시아를 통치하였다. 안나 페트로브나는 캐서린 여제가 제정러시아의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캐서린에 의해 분쇄되었다.

 

1763년에 폴란드의 아우구스트 3세(August III)가 세상을 떠났다. 폴란드는 새로운 군주를 선출해야했다. 캐서린은 정부인 젊은 포니아도브스키를 새로운 폴란드 왕으로 밀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별짓을 다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포니아도브스키의 삼촌으로 왕족인 아담 차르토리스키를 폴란드의 국왕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견해도 강력했다. 폴란드에서 왕위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자 캐서린은 이듬해인 1764년 8월 러시아군을 보내 만일 포니아도브스키를 국왕으로 삼지 않는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위협하였다. 결국 폴란드는 캐서린의 총칼에 굴복하여 포니아도브스키를 폴란드의 왕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유럽의 각국들은 이야말로 캐서린이 폴란드를 누워서 삼키려는 욕심이라고 주장하며 포니아도브스키가 왕이 된 것을 반대하였다. 특히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2세가 가장 두드러지게 반대했다. 프레데릭 2세는 만일 캐서린이 포니아도브스키와 정식으로 결혼한다면(그래서 폴란드를 집어 삼킨다면) 전 유럽이 들고 일어나서 캐서린을 잡아 귀양 보낼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캐서린은 포니아도브스키와 결혼까지 할 생각은 도무지 없었다. 캐서린은 그 때 새로운 애인인 올로프(Orlov)와 좋아 지낸지 오래여서 이미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던 처지였다. 캐서린은 이런 저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포니아도브스키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하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포니아도브스키는 첫 사랑을 간직한다는 생각에서 평생동안 결혼하지 않고 지냈다. 아무튼 포니아도브스키는 폴란드 국왕이 되지 못하였으며 그로부터 폴란드의 분할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폴란드의 아우구스트왕(재위: 1734-1763). 그의 뒤를 이어 캐서린의 정부인 스타니슬라브 아우구스트 포니아토브스키가 잠시 폴란드 왕이 되었다.

 

폴란드를 놓고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3국이 나눠먹기 작전에 들어갔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치하였다. 3국은 1772년에 기본적인 분할에 합의했다. 이를 제1차 분할이라고 한다. 1차 분할에서는 2만 평방 마일의 폴란드 영토를 균등 분할하였다. 러시아는 러시아에 면한 동부 영토를 차지했다. 그리고 리가(Riga)-폴로츠크(Polotsk)-모길레프(Mogilev)와 같은 중요한 도시를 얻었다. 1793년에 제2차 분할이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폴란드의 나머지 땅 거의 모두를 차지했다. 민스크로부터 키에프까지였으며 아래로는 흑해에 가까운 곳까지 차지하였다. 1795년에 폴란드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나라를 빼앗긴 폴란드 국민들의 피 눈물 나는 봉기였다. 캐서린이 군대를 보내어 진압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땅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다시 나누었다. 캐서린이 세상을 떠나기 1년전이었다.

 

7년 전쟁(1756-1763) 중의 콜린(Kolin) 전투. 7년 전쟁은 미국대륙에서 프랑스와 인디안 사이의 전투로 촉발되어 유럽으로 전이되었다. 유럽의 여러 맹주들이 서로 영토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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