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스캔들 제조기

정준극 2009. 12. 16. 11:44

[개인생활] - 스캔들 제조기

 

캐서린의 마지막 정부였던 주보프 공자의 궁전은 캐서린의 궁전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니 왔다갔다하기도 쉬웠다.

 

캐서린은 장기집권 기간 동안에 여러 명의 애인을 두었다. 오늘날의 견지에서 보면 애인이지만 당시에는 공공연한 정부(情夫)였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독신생활 34년 동안 별별 스캔들이 다 많았다. 정부 중에는 캐서린의 총애를 듬뿍 받아 고위직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고 커다란 장원과 농노들을 선물로 받아 안락한 생활을 보장 받은 사람도 있었다. 상당기간 동안 캐서린의 정부였으며 아울러 유능한 자문관이었던 그리고리 포템킨(Grigori Potemkin)과의 관계가 1776년에 끝났을 때 포템킨은 캐서린에게 잘 생기고 지성적인 새로운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알렉산더 드미트리에프-마모노프(Alexander Dmitriev-Mamonov)였다. 캐서린은 자기의의 관계가 끝난 남자들에게도 상당히 관대하여 돌보아 주었다.

 

알렉산더 마모노프(1758-1803)

 

자바도브스키(Zavadovsky)는 캐서린과 헤어질 때 캐서린으로부터 5만 루블의 일시금과 매년 5천 루블의 연금을 받는 혜택을 받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 4천명 농노를 거느리는 대장원을 하사받기도 했다. 캐서린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40세 연하의 추보프(Zubov)공자는 변덕이 어찌나 심했던지 캐서린에게 무던히도 애를 먹였다. 캐서린은 비망록에서 첫 번째 정부인 세르게이 살티코프(Sergei Saltykov)와의 사이에 아들 파울(Paul)을 낳았다고 적었지만 파울이 남편 페터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또는 정말로 살티코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아들 파울을 남편 페터를 무척 닮았기 때문이었다. 정부 그리고리 올로프(Grigori Orlov)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시스 보브린스코이(Alexis Bobrinskoy)는 궁정에 나타나지 않도록 멀리 툴라(Tula)라는 지방에서 살도록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생아인 보브린스코이를 백작에 봉하여 넉넉하게 지내도록 했다. 이제 캐서린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몇몇 정부(情夫)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플라톤 주보프 공자(1767-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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