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욕의 마사코

나루히토 집중 분석

정준극 2009. 12. 24. 15:06

나루히토 왕세자 집중 분석

 

일본 제126대 천황(일왕)이 될 나루히토 왕자


왕세자(일본에서는 황태자) 나루히토는 1960년생이니 2016년으로 어느덧 56세에 들어섰다. 나루히토 왕자는 부친 아키히토(明仁) 일왕(일본에서는 천황)과 어머니 미치꼬(美智子)왕비(일본에서는 황후)의 장남으로 동경에 있는 궁내청 병원에서 1960년 2월 23일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왕자에 대한 호칭이 부여되었다. 浩宮德仁親王이었다. 나루히토(德仁)란 말은 사서삼경의 중용(中庸)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나루히토는 네 살 때에 동경 메히로(目白)에 있는 가꾸슈엔(學習院) 유치원에 입학하였다. 가꾸슈엔은 주로 왕족이나 귀족 집 자제들이 다니는 교육기관이다. 당시 왕세자비(황태자비)인 미치꼬가 아장아장의 왕자를 데리고 유치원에 첫 등원하였을 때 구름같이 몰려든 동네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고 유치원 직원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서 나루히토는 바이얼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비올라로 바꾸었다. 그 후에도 계속 비올라 연습에 정진한 나루히토는 대학 시절, 대학관현악 연주회에서 비올라 독주를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세 살때에 남동생 아키시노미야 후미히토(秋宮 文仁) 친왕이 태어났고 한참 후, 나루히토가 아홉 살 때에 여동생 노리노미야 사야꼬(紀宮 淸子) 내친왕이 탄생하였다.

 

웃고 있는 어린 나루히토와 역시 웃고 있는 어머니 미치꼬

 

나루히토는 유치원을 거쳐 같은 계열인 가꾸슈엔 초등과에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 때 각자 장래의 포부를 쓴 문집이 발간되었다. 나루히토는 ‘나는 장래에 일본 역사를 공부하겠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나중의 일이지만 나루히토는 그 말대로 대학에서 일본 역사를 공부하여 중세 일본의 교통문제 전문가가 되었다. 나루히토는 고등부를 거쳐 열아홉살 때에 가꾸슈엔 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시절, 나루히토는 음악부 관현악단의 비올라 연주자로서 여가 활동을 즐겼다. 그런가 하면 테니스에도 열중하였다. 왕자가 20세 되던 해, 성년식을 치루었다. 일본에서는 성년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가관(加冠)의 의(儀)라고 한다.


후쿠시마 츠나미 희생자돕기 자선음악회에서 비올라 협연을 한 나루히토 왕자

 

가꾸슈엔 대학을 졸업한 왕자는 이어 같은 학교의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에 진학하여 일본 중세사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즉 왕자가 23세 되던 해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마튼 칼레지로 유학을 떠난다. 연구 테마는 ‘18세기 영국 테임스강의 수상 교통 고찰’이었다. 별걸 다 연구했다. 몇 년 후  장래의 배우자가 될 마사꼬도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두 사람이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같은 대학에 머물렀었다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수 있다. 나루히토는 3년 동안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학교 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테임스 강에서의 보트 경주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학생들의 모임에서 비올라를 연주하여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테니스는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일왕(천황)의 직계로서 그렇게 오랫동안 황궁을 떠나 있을 수는 없었다. 1985년 귀국길에 오른 왕자는 미국을 거쳐 오면서 백악관에 들려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온 나루히토 왕자는 그 후 한두 해 동안 집에 조신하게 있으면서 일본사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할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의 병세가 악화되었던 것도 외국여행을 자제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귀국한 이듬해 아카사카 왕실 저택에서의 스페인 공주를 위한 다과회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마사꼬와 운명의 만남이 있었다.

 

토쿄의 가쿠슈인대학교의 강의실 건물. 황족과 귀족들이 다니는 학교로 유명하다. 유치원서부터 여자대학교, 일반대학교까지 있다.

 

왕세자 책봉

 

나루히토왕자와 마사코 왕자비와 아이코 공주(도시노미야 아이코 신나이). 2015년으로 나루히토 55세, 마사코 52세, 아이코 14세

 

1989년 새해가 밝아 온지 며칠 후(1월 7일), 대동아전쟁의 주범 히로히토 일왕이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다음번 일왕으로서 나루히토의 아버지 아키히토가 즉위했고 이어서 나루히토는 사실상의 왕세자로 대우를 받았다. 왕세자가 되면 일왕과 같은 집에서 살지 못한다는 법도가 있다. 이듬해 왕세자는 아카사카 어소(御所)에서 동궁어소로 거처를 옮겨 독립하였다. 왕세자 책봉식은 1991년에 있었다. 나루히토가 서른한 살 되던 해였다. 그해 여름, 남동생 후미히토가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어머니 미치코의 판단으로 둘째 아들부터 결혼시켰다. 상대는 평민출신인 키코였다. 그로부터 3년후, 왕세자와 마사꼬의 결혼이 발표되었다. 역시 마사코도 평민 출신이었다.

 

네덜란드 Willem-Alexander 국왕 대관식에 참석한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 왕자비.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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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8월 8일 리우 올림픽이 초반전에 들어간 시기에 아키히토 일왕은 영상 성명서를 내고 이제 나이도 많고 여러가지로 심신이 고단하여서 일왕의 노릇을 하기가 어려우니 왕세자인 나루히토에게 양위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양위를 기정사실로 받아 들인다면 절차상 나루히토가 신왕으로 취임하기 까지 최소 6개월에서 수년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마사코는 저들이 말하는 천황의 부인이 된다. 그러면 곧이어 그 다음의 왕위는 누가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코인가 후미히토인가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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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왕세자는 2019년 10월 22일에 일본의 제126대 천황인지 무언지로 취임한다고 한다.(2018. 12). 아키히토가 양위의사를 밝힌지 거의 2년만의 일이 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8년 4월 30일에 퇴위할 예정이다. 나루히토가 새로운 일왕이 되면 연호도 새로 정해서 공포한다. 아키히토 시기에는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이었다. 2019년 4월 1일 발표된 바에 따르면 나루히토의 연호는 레이와(令和)라고 한다.


아키히토-미치코 부부와 큰아들 나루히토. 그 뒤의 여인은 마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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