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욕의 마사코

엄숙한 성혼의 예(禮)

정준극 2009. 12. 24. 15:09

14. 엄숙한 성혼의 예(禮)

 

1993년 6월 9일의 아침. 메구로의 오와다 외무차관 저택 앞길은 인산인해였다. 5백여 취재진이 몇 겹으로 둘러서서 대문을 열고 나올 왕세자비, 미래의 일왕 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를 메운 동네 사람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이 날을 위해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은 일장기를 들고 진작부터 들떠 있었다. 초여름의 가는 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마사꼬는 이날 아침 4시쯤 일어났다. 아침 6시 반경, 궁내청에서 시종장과 시종들이 마사꼬를 모시러 왔다. 야마시타 시종장은 1층 응접실에서 마사꼬의 부모의 영접을 받았다. 야마시타 시종장은 ‘왕세자 전하의 결혼에 즈음하여 왕세자비 전하를 모시고 식장까지 갈수 있게 되어 영광이올시다’라고 말하였다. 마사꼬는 시종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결혼식의 아침에 마사꼬 왕세자비를 모시러 온 궁내청 시종장을 마사꼬와 부모가 영접하고 있다.

 

정확이 오전 6시 반, 마사꼬는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대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 오와다씨의 한 마디 ‘행복하게 살아다오!’가 마사꼬의 눈언저리에 안개를 서리게 했다. 마사꼬는 하늘색 원피스, 하늘색 모자, 하얀색 핸드빽, 하얀색 장갑, 하얀색 구두, 하얀색 스타킹 차림이었다. 진주 목걸이가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사코에 대한 책. 벤 힐스 지음. 마사코를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아침부터 왕궁에는 축하객들이 속속 모습을 보여였다. 미야자와(宮澤) 총리대신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 8백명이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국에서는 왕족들이 축하 사절로 참석했다. 결혼식이라고 해서 신랑입장, 신부입장, 혼인서약, 성혼 선언, 축가, 인사말씀 등등의 일반적인 절차는 아무것도 없다. 일본 왕실의 결혼식은 간단하다. 겐쇼(賢所)라고 불리우는 왕궁(고코)의 작은 방에 왕세자와 왕세자비 두 사람만 들어가서 조상들에게 절하고 술한잔을 나누어 마시면 그것으로 끝난다. 소요시간 10분 이내. 이를 ‘황령전(皇靈殿) 신전(神殿)에 배알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겐쇼는 구중궁궐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가족들과 친지 및 하객들은 겐쇼 밖의 대기실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겐쇼에서의 예가 끝나면 모두들 집으로 돌가가면 된다. 그것으로 성혼식은 끝이다. 가족석에는 일왕 아키히토와 왕비 미치꼬가 제일 앞자리에 앉았고 그 옆에 오와다씨와 부인인 유미꼬 여사가 쌍둥이 딸들과 함께 앉았다. 이날만은 제 아무리 수상(총리대신)이라고 해도 오와다 외무차관 저 뒤편에 앉아야 했다.

 

성혼식이 열린 겐쇼

 

성혼식의 절차, 신부 신랑의 복장 등에 대하여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것 같아 생략. 다만 왕세자비의 옷차림을 일견하자면 전통 의상으로서 무려 열두 벌의 옷을 겹 입는다. 대단하다. 한편, 이날 일본열도는 축하의 도가니였다. 웬만한 도시의 거리에서는 결혼축하주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집집마다, 건물마다, 가게마다 ‘고다이츠사마(皇太子님)와 마사꼬사마(雅子님), 오메데도고자이마스!(축하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내거렸다. 결혼식 장면이 생중계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의 5억 인구가 결혼식 장면을 지켜 보았다. 영국의 BBC도 생중계하였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하였던 왕세자의 결혼식이라는 의미도 강조하면서...

 

도쿄를 방문한 철수부부와 함께. 2009. 철수의 부인(콘월공작부인) 

                                                                    

15. 신데렐라의 오픈카 퍼레이드

 

 

황령전 신전에 배알하는 의식을 거행하므로서 부부로서 가약이 맺어진 왕세자와 왕세자비는 오후 3시, 고꼬(皇居)에서 일왕과 왕비에게 조견(朝見)의 의식을 가졌다. 결혼을 보고하는 의식이다. 왕세자는 연미복, 왕세자비는 진주가 박힌 하얀 드레스에 티아라(왕관)를 썼다. 이어 오후 4시 45분, 약 30분간에 걸친 오픈 카 퍼레이드가 있었다. 고꼬를 출발한 왕세자 부부의 무개 자동차가 경찰 싸이드카 수십대의 호위를 받으며 아카사카의 동궁가어소(東宮假御所)까지 가는 행렬이었다. 연도에는 줄잡아 20만명의 국민이 새벽부터 이 행렬을 보기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동원된 질서유지 경찰만 해도 5천여 명. 백성들은 ‘마사꼬사마’를 연호하며 신데렐라의 결혼을 축하하였다. 아침나절에는 비가 솔솔 뿌렸는데 오픈카 파레이드 시간에는 쾌청이었다. 1963년 12월 9일 생인 마사코는 결혼과 함께 나루히토신노히 마사코(徳仁親王妃雅子)라는 호칭을 받았다.

 

성혼식후의 오픈 카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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