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욕의 마사코

왕세자비 예비교육 3개월

정준극 2009. 12. 24. 15:05

왕세자비 예비교육 3개월

 

마사꼬는 왕세자비로서의 교육을 받는 것이 시급했다. 3개월에 걸친 집중 교육이었다. 왕실 법도에 정통한 원로들이 개인 교습의 강사진이었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부터 익혀야 했다. 기가 막힌 것은 왕세자비로서, 즉 차기 일왕의 왕비로서 말하는 스타일까지 바꿔야 했다. 일왕과 그의 직계 가족은 일반 사람들과 말투가 달라야 했다. 일왕은 일본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신 그 자체이므로 목소리가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메이지(明治) 일왕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왜 목소리가 저럴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 젊은 남자인데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중성의 목소리이다. 일왕은 신이므로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라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목소리도 중성이어야 합당하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왕비가 될 왕세자비이므로 일반인의 목소리와는 달라야 했다.

 

마사꼬에 대한 왕실 수업 장면

 

왕세자비는 일반국민(잇반고꾸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처럼 성(姓)이 있고 이름이 있을수 없다. 신이 무슨 야마모토상, 나까무라상 처럼 성이 있다는 말인가? 성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있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신의 아버지도 야마모토상이나 나까무라상이 되어야 하니 말도 안된다는 설명이다. 마사꼬가 왕세자비로 내정된 순간부터 궁내청은 마사꼬의 호적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마사꼬는 오와다라는 성을 가질수가 없었다. 니이가타 현청에 있는 호적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아 왔던 모든 동네 마을의 주민등록을 말살하고 오와다 집안을 위한 새로운 호적을 만들어야 했다. 그 작업에 한달이 걸렸다. 이렇게 하여 마사꼬는 아버지의 성인 오와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제는 그저 마사꼬사마(사마라는 말은 님이라는 뜻)일 뿐이었다. 일본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우리와는 달리 친정 성을 버리고 남편 성을 따르는 것이 관례이다. 오와다 마사꼬가 나까무라 겐타로와 결혼했다면 그 날로 나까무라 마사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일왕의 가계인 왕세자의 경우는 성이 없다. 그러므로 마사꼬도 성을 가질수 없다. 이윽고 마사꼬도 일본인들이 말하는 신의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21세기의 첨단현대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직업외교관의 집안

 

마사꼬의 아버지 오와다 히사시씨는 직업 외교관이다. 니이가타 현 출신으로 동경대를 거쳐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모스크바와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본부 발령을 받아 조약국장을 지냈으며 마사꼬가 결혼하기 전해에 외무성 사무차관으로 승진하였다. 오와다 히사시의 아버지, 즉 마사꼬의 할아버지는 니이가타 주립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같은 지방 초등학교 여선생님과 결혼하여 5남 3녀의 자녀를 두었는바 마사꼬의 아버지는 차남이었다. 마사꼬의 큰 아버지는 전문대학교 교수였다가 작고하였고 셋째 삼촌은 변호사이며 넷째 삼촌은 국제관광진흥회라는 단체의 이사이고 막내 삼촌은 운수성 항만국 항만계획심사관이다. 세명의 고모중 큰 고모는 일찍이 타계하였고 둘째 고모의 남편이 운영하는 벽돌공장의 상무였으며 셋째 고모의 남편은 일본흥업은행 상무였다. 그러고보면 마사꼬의 아버지가 형제자매들 중 가장 출세한 셈이다. 외무성 차관이므로 말이다. 마사꼬의 어머니 유미꼬(優美子)는 군인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의 친정 아버지, 즉 마사꼬의 외할아버지는 특별하지 않지만 외증조 할아버지는 해군 중장이었다. (2013현 현재 마사꼬의 친정아버지는 네델랜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장이다.)

 

 마사코의 어린시절 부모, 조부모, 삼촌과 함께 (곰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가 마사코. 양 옆이 어머니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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