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라마의 태국

프랑스 대사의 딸

정준극 2009. 12. 29. 04:33

13. 프랑스 대사의 딸

 

   

결혼당시의 부미볼 아둘라야데즈와 시리키트 키타야카라

 

왕비는 프랑스주재 태국 대사의 영애였다. 부미볼 국왕은 스위스 체류 중 파리에 갔다가 현지 태국대사의 영접을 받는 중 이 지성적이며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그만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 시리키트 키티야카라(Sirikit Kitiyakara)라는 이름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파리의 ‘볼로뉴 숲’과 알프스의 스키장을 오가며 데이트를 했다. 지금은 둔둔한 모습이지만 젊은 시절의 왕비는 미스 유니버스 뺨칠 정도로 참으로 미인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시아에서 미스 유니버스가 나온 것은 태국이 처음이다. 1965년도 미스 유니버스인 아파스라 홍사쿨라(Apasra Hongsakula)라는 미인이었다.

 

테국출신의 1965년도 미스 유니버스인 아파스라 홍사쿨라 

 

왕자와 공주들


라마9세 부미볼 국왕과 왕비 사이에는 1남 3녀를 두었다. 첫 자녀는 딸이다. 우볼 라타나(Ubol Ratana) 공주이다. 공부를 잘해서 우수과학도로서 미국에 유학을 갔다. MIT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거기서 피터 라드 젠센(Peter Ladd Jensen)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왕실에서는 왕족과 결혼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국경과 인종을 넘는 사랑으로 극복했다. 두 사람은 MIT 졸업 후 1972년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동갑이었다. 이후 우볼 라타나 공주는 UCLA에서 공중보건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다가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원만치 않아 1998년 이혼하였다. 우볼 라타나 공주는 2001년까지 산디에고에 살다가 방콕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자녀가 있다. 첫째는 딸로서 플로이팔린(Ploypalin)이라고 했고 둘째는 아들로서 부미(Bhumi)였으며 망내는 딸로서 시리키티야(Sirikitiya)였다. 국민들은 아름답고 지성적인 첫째 공주가 미국에서 외국인과 결혼코자 하자 ‘공주 잘 한다!’는 측과 ‘공주 잘 못한다!’는 측으로 의견이 나뉘어졌으나 왕실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공주의 말에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 부미볼 국왕은 첫째 딸 우볼 라타나의 왕족 지위를 삭제하였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에 츠나미가 몰아 닥쳤을 때 우볼 라타나의 아들 부미 젠센은 태국 해안가에서 제트 스키를 타고 있다가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싸여 세상을 떠났다. 21세였다. 부미볼 국왕은 부미 젠센(애칭 쿤 품)의 장례식을 왕실의 왕자에 해당하는 예로서 치루도록 했다.

 

부미볼국왕의 장녀와 그의 딸. 네 자녀 중에서는 인물이 그중 낫다.

 

둘째는 왕세자이다. 마하 바지랄롱코른(와지랄롱꼰)이다. 이름이 바지락 콩칼국수 같아 좀 괴상하지만 하여튼 왕세자이다. 셋째는 딸로서 마하 챠크리 시리도른이다. 출라롱코른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이 아가씨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백성들은 시린도른 공주를 프라 테프라고 부른다. 천사와 같은 공주라는 뜻이다. 2010년 현재 나이는 55세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막내딸은 출라보른이다. 출라롱코른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1982년에 공군 장교와 결혼했다가 1984년 이혼했다. 그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아무튼 태국 국왕은 1남 3녀를 두었다. 엄마가 아주 미인이며 아빠도 야무지게 생겼는데 아이들은 어벌벌하게 생겼다. 더구나 왕세자는 돌쇠같이 생겼다. 둘째 공주 시리도른도 선머슴 같긴 하지만 그나마 듬직하게 잘 생긴 평이다. 셋째 공주는 날씬 하지만 모습이 공주로서 ‘영 아니올시다!’이다. 입을 헤 벌리고 있기가 일수이다. 그래도 똑똑은 해서 대학 졸업 후 ‘출라 대학’의 강사로 나가기도 했다.

 

왕세자와 첫번째 세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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