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 오페라극장

로나허극장(Ronacher Theater)

정준극 2010. 1. 7. 16:55

로나허극장(Ronacher Theater) - Establissement Ronacher

뮤지컬과 버라이어티 쇼의 무대

www.musicalvienna.at

1구 자일러슈태테(Seilerstätte) 9 및 힘멜포르트가쎄(Himmelpfortgasse) 25

 

로나허극장

                                  

슈타트파르크 건너편, 라디슨 SAS 호텔과 마리오트 호텔 사이의 길이 힘멜포르트가쎄이다. 힘멜포르트가쎄가 자일러슈태테와 만나는 곳에 아름다운 로나허극장이 있다. 로나허극장은 비엔나에서 라이문트극장과 함께 뮤지컬 공연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로나허는 좀 더 대중적인 연예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린다. 예를 들면 버라이어티 쇼 등이다. 로나허극장은 한 때 Establissement Ronacher라고 불렸다. 로나허 시설물이라는 뜻이었다. 로나허극장은 처음에 비너 슈타트테아터(Wiener Stadttheater: 비엔나 시립극장)로서 출발했다. 비엔나극장연맹이 건설했다. 설립 대표자는 저널리스트인 막스 프리드랜더(Max Friedländer) 및 극작가 겸 극장관리자인 하인리히 라우베(Heinrich Laube)였다. 즉, 관영극장이 아니라 사설극장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검열에 영향을 받지 않는 평민관중을 위한 극장, 그러면서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와 경쟁할수 있는 새로운 극장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현재의 로나허극장을 건설했다. 로나허극장은 1872년에 개관되었다. 그러다가 12년 후인 1884년 뜻하지 아니한 화재로 건물이 완전 잿더미가 되었다. 옛날에는 전기가 없고 촛불을 사용했으며 난방도 장작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말 불조심을 해야 하는데 간혹 그렇지 못하여 화재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한 때에 안톤 로나허(Anton Ronacher)라는 신사가 잿더미의 폐허를 구입하였다.

 

원래 안톤 로나허는 적당한 규모의 극장을 새로 지으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축을 착수하였는데 중도에 소방법이 개정되어 도저히 극장으로서 허가를 받기가 어렵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반극장이라고 하면 사방 어디서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어야 하는데 새로 지은 건물은 출입구가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1888년 콘서트 장소 겸 무도회장으로 허가를 받아 겨우 오픈할수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은 인접한 호텔과 연계되어 전기도 사용할수 있었다. 반면, 새로운 건물은 호텔의 무도회 등 행사를 위한 장소로 제공될수 있었다.

 

로나허극장의 오디토리엄

 

로나허가 더 이상 정식극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시 말하여 일반극장처럼 객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뜻과 같다. 오디토리엄에는 객석 대신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공연 중에 먹고 마시고 담배를 피울수 있었다. 로나허는 점차 버라이어티 극장으로 변해 갔다. 몇 년후 안톤 로나허는 경제적 문제로 극장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밖에 없었다. 그후 로나허극장의 수준은 점점 낮아졌다. 연극이나 오페레타는 찾아볼수 없고 아크로바트나 서커스까지도 등장하는 잡탕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나마 점잖은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교외에 사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교외라는 것은 현재의 2구에서 9구까지를 말한다. 로나허는 서민층들이 자리를 메꾸게 되자 그들이 좋아하는 버라이어티와 같은 상당히 천박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하게도 로나허는 2차 대전이 끝난후 얼마 동안 격조 높은 프로그램을 유지할수 있었다. 왜냐하면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가 폭격으로 공연할수 없게 되어 부르크테아터 앙상블이 1955년 부르크테아터가 복구될 때까지 로나허를 빌려 연극을 공연했기 때문이었다. 부르크테아터 팀이 본집으로 돌아가자 로나허는 다시 예전처럼 버라이어티 쇼 또는 캬바레를 운영하는 수준 낮은 공연장이 되었다. 그런것 가지고는 극장이 수지를 맞출수 없었다. 로나허는 1960년대부터 오스트리아국영방송인 ORF에게 무대를 임대하였다. ORF는 로나허에서 공개방송을 하거나 또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로 사용하였다. ORF는 1976년까지 로나허를 사용하고 철수했다. 로나허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로나허는 그로부터 10여년간 별로 하는 일이 없이 빈무대를 지키며 지내야 했다.  

 

로나허극장 정면 외관

 

처음에 로나허를 출범하였던 사람들은 ‘이거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비엔나극장연맹은 아예 로나허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모여 대책을 협의했다. 예전의 명성을 되찾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로나허는 곧이어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87년 로나허는 뮤지컬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와 함께 공연이 없는 날에는 일반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로 빌려 주었다. 예를 들면 시상식이나 대규모 회의 등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기존 시설에 3층(우리 식으로는 4층)을 올리기로 했다. 공사는 2008년에 최종 마무리 되었다. 고전적인 감각을 살리는 보수공사였다. 그리하여 이제 로나허는 비엔나의 또 다른 뮤지컬 명소로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로나허극장 정면 상단의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