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 오페라극장

링극장(Ringtheater)

정준극 2010. 1. 7. 16:52

링극장(Ringtheater)

‘호프만의 이야기’ 비엔나 초연

 

링극장. 화재 이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서 현재는 비엔나경찰국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링극장(Ringtheater)은 비엔나의 1구를 반지(링)처럼 둘러싸고 있는 링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링극장이라고 불렀다. 링극장은 1구 쇼텐링(Schottenring) 7번지에 있었다. 그 자리에는 현재 비엔나 경찰국 본부가 들어서 있다. 링극장은 1874년에 하인리히 폰 회르스터(Heinrich von Förster)가 건축했다. 링극장은 처음에 오페라공연과 연주회를 개최하였으나 나중에는 연극만을 무대에 올렸다. 그러다가 개관한지 7년이 지난 1881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완전 잿더미가 되었다. 1874년 1월에 오픈하였을 때에는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에서의 심각한(Serious) 오페라와는 달리 코믹 오페라 공연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극장 이름도 ‘오페라 코믹’이라고 불렀다. 당시 슈타츠오퍼는 호프오퍼(Hofoper: 궁정오페라극장)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878년부터는 극장장의 방침에 따라 독일어 연극도 프로그램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극장 이름을 ‘링극장’으로 변경하였다.

 

링극장은 원래 오페라 코믹을 위주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슈타츠오퍼에 비하여 작은 규모로 건설했다. 물론 슈타츠오퍼처럼 대규모의 극장을 지을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객석도 1,700석 밖에 되지 않았다. 대신 웅장한 멋을 부리기 위해 천정을 높게 만들었다. 어찌보면 원통형의 오디토리엄이었다. 그로 인하여 화재에는 취약하였다. 1881년 12월 8일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걱정했던 대로 불길은 삽시간에 높은 천정으로 이어져 극장은 완전 잿더미가 되었다. 공식집계에 따르면 이날의 화재로 무려 384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참사였다. 이날의 화재를 Ringtheaterbrand(링극장화재)라고 부른다. 링극장화재를 기화로 새로운 소방법이 제정되었다. 내용은 내화성 커튼을 설치토록 하며 통풍을 위한 외창을 만들도록 한 것 등이다.

 

화재 전의 링극장

 

링극장이 있던 자리에는 황제의 개인 자금으로 이른바 쥔하우스(Sühnhaus: 속죄의 집)가 세워졌다. 불의의 화재로 목숨을 잃은 수백명의 시민들에게 속죄하는 의미를 지닌 집이었다. 새로 지은 건물은 개인저택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오른 1945년 3월 연합군의 포격을 받아 또 다시 폐허가 되었다. 몇 년 동안을 폐허로 방치하다가 1969년에 사무실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74년에 완성하였고 비엔나 경찰국 본부가 들어섰다. 이밖에도 이 건물에는 연방안전보장검사국도 입주하여 있다. 1881년의 참사는 경찰국 건물 내에 명판으로 기념하고 있다. 링극장 당시, 건물의 기둥에 있었던 입상 조각은 현재 푀츨라인스도르프의 슐로스파르크(Schlosspark)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