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 오페라극장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 비엔나강변극장

정준극 2010. 1. 7. 17:06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 비엔나강변극장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베토벤 지휘의 ‘휘델리오’ 초연

www.theater-wien.at

6구 링케 빈차일레(Linke Wienzeile) 6


19세기 초반의 테아터 안 데어 빈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비엔나 3대 오페라극장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인 ‘마술피리’가 초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입증이나 하듯 ‘테아터 안 데어 빈’의 구정문(밀뢰커가쎄에 면한 입구)에는 파파게노와 세 소년의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파파게노토르(파파게노문)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이 극장이야말로 ‘마술피리’와 인연이 있는 극장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현재 나슈마르크트(Naschmarkt) 옆에 있는 '테어타 안 데어 빈'은 '마술피리'가 초연된 그 장소가 아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1791년에 초연되었고 ‘테아터 안 데어 빈’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801년에 오픈하였기 때문에 현재의 '테아터 안 데어 빈'이 '마술피리'가 초연된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사실상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오늘날의 뷔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Wiednerhauptstrasse)에 있었던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Theater auf der Wieden)에서 초연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 건물은 전쟁 중에 파괴되어 흔적을 찾아볼수 없다. 어쨋든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오픈 이래 음악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여러 작품들이 초연된 장소로서 기억되고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휘델리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칼 밀뢰커의 오페레타 ‘거지학생’,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초콜릿 병정’등이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의 오디토리엄

    

1801년 6월 13일 오픈한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당대의 극장 흥행주인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의 창작물이다. 쉬카네더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대본을 썼으며 이 오페라가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에서 초연될수 있도록 주선해준 인물이다. 그리고 '마술피리'의 초연에서는 파파게노의 역할을 직접 맡아하기도 했다. 쉬카네더의 극단은 이미 몇 년전부터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에서 인기리에 활동하고 있었다. 활동적이었던 쉬카네더는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이 800석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극장이었기 때문에 좀 더 무대가 넓고 객석이 많은 극장을 갈망하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기계문명도 점차 발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기계장치가 되어 있는 무대를 가지고 싶어 했다. 쉬카네더는 이미 1786년에 정부로부터 새로운 극장건설 허가를 받아 놓았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서 실제로 공사가 착수된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인 1798년이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프란츠 얘거(Franz Jäger)가 제국스타일로 건축하였다. 건축은 1801년 완성되었다. 당시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비엔나에서 가장 화려하며 가장 규모가 큰 극장이었다.

 

비엔나의 유명한 야채과일 시장인 나슈마르크트에서 바라본 빈강변극장

    

개관기념 공연에서는 알렉산더 타이버(Alexander Tyber)의 오페라 Alexander(알렉산더)가 공연되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1813년 헝가리 출신의 페르디난트 폰 에르되드백작이 매입하여 1826년까지 소유하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오페라와 발레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마련하였으며 좀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판토마임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도입하였다. 하지만 무대장치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바람에 재정이 파탄되어 1826년에 극장을 경매에 붙이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후 여러번에 걸쳐 소유주가 변경되었고 건물도 많은 변화를 보았다. 현재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쉬카네더를 기념하는 파파게노토르(파파게노문)뿐이다. 하지만 이 문도 도로 구석으로 밀렸으며 극장의 입구는 링케 빈차일레 거리에 면하여 자리 잡게 되었다.

  

파파게노 토르의 상단에 있는 파파게노와 세 소년의 조각. 마술 피리를 불고 있는 파파게노는 1791년 초연 때에 파파게노 역을 맡았던 에마누엘 쉬카네더의 모습이라고 하며 세 소년은 쉬카네더의 아들들로서 역시 '마술피리'의 초연에 출연했다고 한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예술의 도시 비엔나답게 여러 작품의 역사적인 초연장소로서 사용되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시기를 대표하는 극장이었다.

 

- 베토벤의 오페라 ‘휘델리오’(1805. 11. 20). 베토벤은 쉬카네더의 후의로 이 극장의 방 하나를 빌려 지낸 일이 있다. 베토벤의 다른 작품으로서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된 것들은 교향곡 제2번(1803), 교향곡 제3번 영웅(1805), 바이올린 협주곡(1806), 교향곡 제5번 운명(1808), 교향곡 제6번 전원(1808), 합창 환상곡(1808), 피아노협주곡 제4번(1808)등이다.


-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Die Neger(네거): 1804. 11). 살리에리의 마지막 오페라

- 빌헬미나 폰 헤치(Wilhelmina von Chezy)의 Rosamunde, Fürstin von Zypern(사이프러스의 왕 로자문데: 1823). 프란츠 슈베르트가 이 연극의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을 작곡했다.

-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Die Fledermaus(박쥐: 1874. 4. 5)

- 칼 밀뢰커의 오페레타 Der Bettelstudent(거지학생: 1882. 12. 6)

- 요한 슈트라우스의 Die Zigeunerbaron(집시남작: 1885. 10)

- 칼 첼러의 오페레타 Der Vogelhändler(새장수: 1891. 1. 10 )

- 리하르트 호이버거의 오페레타 Der Opernball(오페라무도회: 1898. 1. 5)

-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Die lustige Witwe(메리 위도우: 1905. 12. 30)

-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The Chocolate Soldier(초콜릿 병사: 1908. 11. 14)

-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Der Graf von Luxemburg(룩셈부르크 백작: 1909. 11. 12)

- 엠메리히 칼만의 오페레타 Grafin Mariza(마리차 백작부인: 1924. 2. 28)


이밖에도 연극으로서는 프란츠 그릴파르저의 Die Ahnfrau(할머니: 1817),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의 Der Zerissene(염세주의자: 1844) 등이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무대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오스트리아가 독립국으로 인정을 받은 1955년까지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임시본부로 사용되었다. 슈타츠오퍼는 전쟁중 폭격으로 손상되어서 사용할수 없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1955년에 건물의 안전진단을 위해 폐쇄되었다. 1960년대에는 도시계획에 의거, 건물을 철거하고 주차장으로 사용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카네기 홀을 철거하고 주차장으로 만든 예가 있었다. 다행히 ‘테아터 안 데어 빈’은 1962년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여 존립하게 되었다. 현대적 뮤지컬 극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이후 영어로 된 뮤지컬이 자주 공연되었다. 뮤지컬 Cats(캣츠)는 7년 동안 계속 공연되었다. 1992년에 오스트리아 뮤지컬인 Elisabeth(엘리자베트: 씨씨)가 공연된 것은 ‘테아터 안 데어 빈’의 또하나 기록이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 입구

     

‘테아터 안 데어 빈’은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모차르트의 오페라만을 공연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첫 프로그램은 Idomeneo(이도메네오)로서 바리톤 닐 쉬코프(Neil Schicoff)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이후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전통적인 모차르트 오페라 이외에도 바로크 오페라, 현대 오페라를 공연하여 팬들을 감동케 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로서는 La finta semplice(가짜 하녀), Mitridate, Re Di Pnto(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 Die Zauberflöte(마술 피리)가 무대에 올려졌다. 현대 오페라로서는 제이크 히기(Jake Heggie)의 Dead Man Walking(사형수 입장)등이 시도되었으며 바로크 오페라로서는 케루비니, 글룩, 헨델, 하이든 등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다시한번 오페라의 전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뿐만아니라 ‘테아터 안 데어 빈’은 2006년 내부를 새롭게 단장하여 명실공히 국제수준의 오페라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밀뢰커가쎄 쪽에서 본 옛건물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다른 나라의 오페라단과 협동하여 공연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워싱턴오페라, 로스안젤레스오페라,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Teatro Real), 암스테르담의 네델란드 오페라(De Nederlandse Opera), 드레스덴의 작소니 국립오페라(Sächsiche Staatsoper)등이 공동 공연했다. 2013년에는 영국의 젊은 작곡가인 이에인 벨(Iain Bell)의 A Harlot's Progress(할롯의 여정)가 공연될 예정이다. 독일 출신의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가 타이틀 롤을 맡는다.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빈(Wien)은 비엔나를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비엔나강(Wienfluss)을 말한다. 그러므로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비엔나강변극장’이다. 비엔나강은 현재 나슈마르크트(Naschmarkt)가 자리 잡고 있는 곳에 콸콸 흐르던 강이었는데 도시계획으로 유량이 크게 줄어서 졸졸이다.


베토벤이 이 극장에서 1803-04년 지내면서 오페라, 교향곡 3번, 크로이처 소나타 등을 작곡했으며 '휘델리오'를 비롯한 여러 작품이 이 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는 기념명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