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스웨덴의 빅토리아

6.25 사변 때에 도와준 나라 스웨덴

정준극 2010. 1. 16. 06:22

6.25 사변 때에 도와준 나라 스웨덴

 

스웨덴 야전병원부대가 SAS특별기를 이용하여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던 한국을 향하여 떠났다. 만리이역에서 이 나라를 위해 달려온 그들이었다. (Credit: 전쟁기념관) 

 

갑자기 스웨덴 왕실의 빅토리아공주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스웨덴은 우리나라가 북한 김일성 도당이 일으킨 6.25 전쟁 때문에 참혹한 상황에 있을 때에 적십자야전병원부대를 파견하여 전투부상병은 물론 민간인까지 치료해 주었으며 휴전이 되고 나서도 몇년 동안 더 의료봉사 활동을 하다가 떠날 때에는 을지로5가에 지은 메디컬 센터를 우리나라에 이양하여 계속 종합병원으로 봉사할수 있도록 지원 해준 나라이다. 그러므로 친북좌파가 아닌 대한민국의 온당한 국민이라면 그러한 스웨덴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침 2010년은 6.25사변이 일어난지 60년이 되는 해이므로 차제에 스웨덴에 대한 고마운 심정으로 스웨덴 왕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코자 한다. 돌이켜 보면 6.25 사변이 터진지 60년이 지났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모든 것을 세월 탓으로 돌리고 6.25를 잊으면 안될 것이다. 사실 말이지 6.25를 직접 겪었던 피난세대는 우리의 사회에서 거의 사라졌다. 아직 있다고 해도 한쪽 구석에 힘없이 앉아서 ‘그 땐 말이야....’라면서 고생 하던 일이나 생각하며 지내고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6.25를 겪은 세대들로서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6.25의 참상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지내는 것 같아서 무척 속상해 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16개국이 어디어디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며 북한의 체제유지와 핵무기개발을 위해 햇볕이라는 미명으로 돈을 퍼준 반역적 인간들이 누구누구인지 알고 있어야한다는 것이 6.25를 겪으면서 나라를 지킨 참국민들의 한결같은 소리이다.

 

스웨덴야전병원부대 의무장교. 이 천사처럼 아름다운 벽안의 여군은 살아 있다면 이제 80도 넘은 노인일 것이다. 하지만 청춘을 버리고 아무 연관도 없는 극동의 비참한 나라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물설고 낯설은 이곳까지 왔다. 누구때문인가? 북한 공산당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는 북한을 찬양하는 못된 무리들이 있다. 모두 북한으로 보내자.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자. 잃어버린 10년동안 활개를 쳤던 친북좌파들은 모두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왜 안가는지 모르겠다. (사진 Credit: 전쟁기념관) 

 

스웨덴은 6.25전쟁 때에 160명의 야전병원부대를 파견하였으며 병원선은 스캔디나비아 3국이 협동하여 보내주었다. 스웨덴의 적십자야전병원부대원들이 부산비행장에 도착한 것은 1950년 9월 28일이었다. 마침 연합군이 서울을 수복한 날이었다. 스웨덴 의무부대원들은 휴전이 성립된 후에도 상당기간동안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다가 1957년 4월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의료시설을 갖춘 메디컬 센터를 우리나라에 남겨주고 갔다. 현재 서울 을지로 5가에 있는 국립의료원(내셔널 메디칼 센터)이다. 스웨덴은 6.25 전쟁으로 인한 우리의 전쟁고아들을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으로 입양하여 돌보아 주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수잔 블링크의 아리랑’을 보면 스웨덴이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많이 입양하였음을 알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스웨덴이라고 하면 무엇을 연상하는가? 옛날 사람들은 아마 1950년대 말에 을지로5가 메디컬 센터 구내에 있던 스캔디나비아 클럽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스캔디나비아 클럽은 여러 값비싼 음식을 탁자 위에 가득 차려 놓고 접시에 마음대로 담아 가져가서 먹을수 있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배고픈 시절에 “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혹시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식당이었다. 아마 우리나라 뷔페식당의 시초일 것이다. 물론 스캔디나비아 클럽에는 아무나 들어갈수 없었다. 메디컬 센터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요행으로 함께 들어가서 '오늘이 꼭 내 생일날 같아! 아니 환갑날 같아!'라면서 잔뜩 포식하고 나올수 있었다. 스캔디나비아 클럽을 스캔디나비아 3국이 운영하지만 주축은 스웨덴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과연 특별한 나라이구나! 그 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잘 먹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스웨덴의 배우 잉그릿드 버그만

스웨덴 출신의 보컬 그룹 아바(ABBA)

 

한편, 스웨덴이라고 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잉그릿드 버그만을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다가 아바(ABBA)가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에 아바가 스웨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한번 스웨덴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잘 아는대로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도 스웨덴 사람이었다. 해마다 스톡홀름 시청에서 스웨덴 국왕이 노벨상을 시상한다. 그런데 스웨덴은 땅은 넓지만 인구는 적은 나라이다. 재미있으라고 하는 소리지만, 스웨덴의 남단에 있는 말뫼라는 도시를 잡고서 전국토를 뒤집어 보면 이탈리아까지 도달한다고 하니 땅이 얼마나 넓은지 알수 있다. 그런데 인구는 8백만명이 조금 넘는다. 수십년 동안 거의 같은 수준이다. 서울시 인구보다도 훨씬 적다. 그런 나라에서 노벨상을 주관한다. 뿐만 아니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기계공업이 발달해 있다. 사브(Saab)는 비행기와 자동차로 유명하다. 자동차로는 볼보(Volvo)도 빼놓을수 없다. 노키아도 스웨덴 기술이 원천이라고 한다. 굴착기는 스웨덴제가 최고이다. 볼 베아링도 스웨덴이 세계 최고이다. 히틀러는 전쟁 중에 전차에 들어가는 볼 베아링의 확보를 위해 스웨덴을 먹지 못하여 안달하였지만 의연하기가 이를데 없는 스웨덴 사람들은 '만약 히틀러가 처들어 온다면 좋다! 와 봐라! 볼 베아링 공장을 폭파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결국 히틀러가 발도 못 들여 놓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인구가 8백만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참으로 많다. 가구를 만드는 다국적기업인 이케아(IKEA)도 스웨덴이 원조이다. 세계적인 의류 판매업체인 H&M(헤네스 앤드 모리츠)도 스웨덴이 본점이다. 또 있다. 스웨덴은 오래전에 현대 과학기술의 첨단이라고 하는 원자력발전소 설계건설기술도 자립하였다. 이웃 핀란드에 원전(原電)을 수출한바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섰다. 대단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자면 한참 해야 하기 때문에 이만 줄이고 스웨덴의 왕실 이야기로 시선을 돌려보자.

 

SAS전용기에서 내리는 스웨덴 야전병원부대원들. 이들은 7년동안 한국에 체류하면서 실로 수많은 인명을 구하였다. (Credit: 전쟁기념관) 

 

스웨덴은 형식적으로 왕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현재 국왕은 칼 구스타브16세(Carl XVI Gustav)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스웨덴의 현 왕실은 베르나도트(Bernadotte)왕조라고 부른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왕조이다. 스웨덴에는 구스타브라는 이름이 많다. 스웨덴 국왕들의 이름도 거의 모두 구스타브이다. 그런 중에도 스웨덴의 구스타브 왕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의 주인공인 구스타브3세(재위: 1771-1792)이다. 스톡홀름의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측근에 의해 피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구스타브3세의 기마상은 현재 스톡홀름 오페라극장(Operan) 인근의 광장에 우뚝 서있다. 그 구스타브가 오늘날의 구스타브국왕의 증조할아버지 정도가 된다. 또 다른 유명한 구스타브국왕이 있다. 아돌프 구스타브(1882-1973)로서 보통 구스타브6세라고 부르는 양반이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이기도 한 그는 왕세자 시절인 1926년에 루이스 왕세자비와 함께 일제 치하의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어떤 무명의 경주고분에서 봉황이 새겨진 금관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 고분을 스웨덴의 한문표기인 서전(瑞典)에서 ‘서’자를 따고 봉황에서 ‘봉’자를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온 금관은 서봉총금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봉총은 오늘날 경주시 노서동에 터만 남아 있는 고분이다. 

 

 

1926년 구스타브 아돌프 왕세자와 루이스 왕세자비가 경주에서 신라고분을 발굴하고 있다. 가운데 위편에 앉아 있는 분들이 왕세자와 왕세자비.(Credit)

 

아무튼 저 먼 나라에 살고 있는 구스타브 왕세자가 교통도 좋지 않던 시절에 왕세자비와 함께 우리나라 경주에 까지 왔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양반이구나! 잠은 어디서 주무셨나? 샤워시설도 없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아돌프 구스타브 왕세자는 할아버지가 1950년 9월에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라 구스타브6세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돌프 구스타브 왕세자는 국왕이 되자마자 몇달 전인 6월에 우리나라에서 김일성에 의한 남침이 일어나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여 있자 즉각적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수백명의 의무병사들과 함께 병원선을 보내어 부상병들은 물론 민간인 부상자들을 도와주도록 했다. 1950년 9월에 국왕의 자리에 오른 구스타브6세는 대단히 장수하여서 1973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였다. 손자인 칼 구스타브가 구스타브16세로서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현재의 스웨덴 국왕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 현재의 국왕인 구스타브16세의 딸 빅토리아공주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다음번 스웨덴 국왕이 될 인물이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2일 개천절 전날 한국의료진이 경영하는 메디컬 센터로 다시 태어난 국립의료원. 스웨덴을 주축으로한 스캔디나비아 국가들의 지원으로 건설되었다.